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던 어바웃 타임이 인생 영화인 이유

영화 한 편을 세 번 봤는데 매번 다른 영화처럼 느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어바웃 타임이 딱 그랬습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불친절한 영화라고 생각했고, 두 번째 볼 때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세 번째 봤을 때야 비로소 "아, 이게 이렇게 친절한 영화였구나" 싶었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제가 달라진 것이죠.

로맨스인 줄 알았던 영화의 진짜 장르

어바웃 타임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대부분 로맨스 영화로 알고 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보다 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보통 로맨스 영화는 클라이맥스(climax), 즉 서사의 정점을 결혼식이나 고백 장면으로 피날레에 배치하는데, 이 영화는 상영 시간이 약 2시간인데 결혼식이 1시간쯤에 등장합니다. 그 뒤로 아직 1시간이 남았다는 게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란 이야기가 시간 순서와 인과관계를 따라 전개되는 방식을 뜻합니다. 어바웃 타임은 이 구조를 일부러 비틀어 놓습니다. 주인공 팀이 메리와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영화 전반부에 깔끔하게 마무리되고, 후반부는 온전히 가족 이야기, 특히 아버지와의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저는 처음 고등학교 때 이 구조를 이해 못 해서 "영화가 뭔가 흐릿하게 끝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이게 정교하게 계산된 구성이었습니다.

레이첼 맥아담스가 연기한 메리는 로맨스 파트의 중심이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아닙니다. 솔직히 여주인공 메리가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렇게 여유 있고 긍정적이고 현명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런데 그게 영화의 포인트가 아니더라고요. 영화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후반부에 있었습니다.

특히 복권을 긁거나 스포츠 경기 결과를 미리 알아 돈을 버는 식의 전개가 일절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여행 능력을 지극히 일상적인 선택들에만 씁니다. 이 영화가 다른 시간여행 소재 작품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장치가 실제로 하는 일

시간여행(time travel)은 이 영화에서 판타지 설정이 아니라 일종의 사고 실험 도구로 쓰입니다. 사고 실험이란 현실에서 직접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을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추론해 보는 방법론입니다. 팀은 능력을 쓸 때마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마주합니다. 동생 킷캣의 나쁜 남자친구 관계를 바꾸려 과거로 돌아갔더니 태어난 아이의 성별이 바뀌어 버립니다. 딸을 잃을 수 없어 결국 원래의 미래로 돌아가 동생 곁을 지켜주는 방식을 택하죠.

이 지점에서 영화가 전달하는 논리가 명확해집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연애에서 후회했던 순간들마다 팀처럼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특히 연애 관련해서는 왜 그때 그 말을 못 했을까, 왜 그 행동을 했을까 싶은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그런데 되돌린들 결국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는 게 팀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아버지가 팀에게 전하는 조언이 영화 전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같은 하루를 두 번 살아보라는 것, 그러면 처음엔 바쁘고 긴장해서 놓쳤던 것들이 두 번째에는 보인다는 것입니다.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관점에서 이는 주의 자원(attentional resource)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의 자원이란 인간이 한 번에 집중할 수 있는 인지적 에너지의 총량을 뜻하는데, 처음 경험에서는 대부분의 자원이 문제 해결에 쓰이지만 두 번째 경험에서는 여유 자원이 생겨 주변을 더 섬세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의 조언은 이 원리를 삶에 적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관객이 서사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정도는 캐릭터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Emotion Journal). 팀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감이 없고 실수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초능력이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막지 못합니다.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시간들, 해변에서 함께 노는 장면에서 저는 솔직히 눈물을 제법 흘렸습니다.

어바웃 타임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삶의 태도를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1. 하루를 처음 살 때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더라도, 그 하루를 다시 돌아볼 때는 스쳐 지나간 작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챙긴다.
  2.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선택한다. 되돌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현재에 덜 집중하게 된다.
  3. 부작용 없이 바꿀 수 있는 것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관계와 사랑은 특히 그렇다.
  4. 결국 가장 중요한 사람들과의 평범한 하루가 나중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하루를 충실히 산다는 것의 의미

영화 마지막에서 팀이 내린 결론은 단순합니다. 시간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매일 한 번씩 사는 것,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이 그의 최종 선택입니다. 처음 이 결말을 봤을 때는 "그게 다야?" 싶었는데, 세 번째 볼 때는 이게 제일 어려운 결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재 순간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판단 없이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상태를 뜻합니다. 최근 심리학계와 신경과학 연구들에서 마인드풀니스 훈련이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결과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NIH,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팀이 마지막에 선택한 삶의 방식이 이 개념과 정확히 겹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부르는 이유는 화면이 예쁘거나 로맨스가 달콤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꺼내보게 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내일도, 그 다음에도 또 후회할 수 있겠지만 그게 인생 아닐까요. 중요한 건 그 후회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 같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느꼈던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시간여행이라는 장치가 결국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이 영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직 한 번만 보신 분이라면 다시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두 번째 볼 때는 분명히 다른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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