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비극보다 더 슬픈 코미디가 정말로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딱 그런 종류의 작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거대한 슬픔을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유머와 활기를 놓지 않습니다. 보다 보면 비극을 보는 건지 코미디를 보는 건지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아들의 순수함을 지켜주기 위해 온몸으로 버틴 한 아버지의 고군분투가 눈물겹습니다.
끝까지 유쾌했던 아버지
영화 속 귀도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조직적으로 탄압했던 반유대주의(Anti-Semitism) 광풍 속에서 아들 조슈아와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이는 결국 2차 세계 대전 당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희생된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화는 이 거대한 비극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가족의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귀도는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건 게임이고, 1등을 하면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는다고.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는 "설마 저게 통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귀도가 독일어도 모르면서 장교 앞에서 엉터리 통역을 해가며 아들에게 게임 규칙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웃다가 울었습니다. 웃기면 안 되는 상황에서 웃겨야 했던 아버지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죽음의 길로 걸어가면서도 끝까지 유쾌한 장난을 멈추지 않았던 아버지, 그리고 그의 마지막 윙크 하나는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력한 울림을 줍니다. 저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왜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극한 상황이 드러내는 사람의 본성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주목한 것은 귀도의 놀라운 심리적 역량이었습니다. 심리학에는 정서 조절 능력(Emotional Regul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극도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주변 사람에게 깊은 안정감을 심어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귀도는 아들 앞에서 단 한 번도 무너진 표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팔에 낙인이 찍혀 있는 순간에도 조슈아에게는 즐거운 이야기로 포장했으니까요.
제 경험상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주변에 날을 세우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저 역시 피곤하고 지치면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짜증을 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귀도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그게 진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진짜 모습은 편안할 때보다 힘들 때 더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누구나 친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이 꼬이고, 잠이 부족하고, 몸이 아플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다릅니다. 실제로 사람은 극심한 압박을 받으면 평소에는 감추고 있던 모습이 의외로 쉽게 드러나곤 합니다.
그래서 배낭여행이나 장거리 자전거 여행처럼 불편함을 함께 겪는 경험이 상대를 알아가는 데 생각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배가 고플 때, 예약이 꼬였을 때 어떤 말을 하는지를 보면 되니까요. 귀도 같은 사람의 특징도 결국 단순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해결책을 먼저 찾으려 하고, 자기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저 자신도 이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상대방에게 귀도 같은 사람을 바라기 전에, 저 스스로 도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한쪽이 진심을 내어줄 때
이 영화에서 의외로 많은 분들이 지나치는 게 도라의 선택입니다.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수용소에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남편과 아들이 끌려가는 기차에 스스로 올라탑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귀도에게만 눈이 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니 도라 역시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한쪽이 진심 어린 헌신을 베풀면 다른 쪽 역시 그 마음에 응하고 싶어집니다. 귀도가 위기 상황에서도 도라를 향해 음악을 틀어줄 수 있었던 건, 두 사람 사이에 그런 마음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방송실에 들어가 도라가 좋아하는 음악을 수용소에 흘려보내는 장면에서, 저는 이런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보다 이런 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전반부 연애 장면이 영화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다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수용소에서 귀도가 그토록 버틸 수 있었던 건 조슈아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라와의 관계가 그 모든 것을 버티게 하는 근거였기 때문입니다.
우연이 반복되어 필연이 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늘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에 조슈아가 "우리가 이겼다"고 말하는 장면은 볼 때마다 마음을 찌릅니다. 아이는 끝까지 게임을 이긴 줄 압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세계를 그대로 믿고 있으니까요.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귀도는 목숨을 걸었고, 결국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건 결국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로 선택하는 것. 그게 귀도가 보여준 삶이었고,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받은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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