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3월 1일, 구룡역에서 출발한 기차 안. 반대편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를 모른 채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습니다. 영화 <첨밀밀>은 정작 이 장면을 맨 마지막에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이미 10년의 세월을 지나 뉴욕에서 재회한 뒤에야, 그들이 처음부터 같은 기차를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알고 나면 영화 전체가 다르게 읽힙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셈이니까요.
1997년이 다가오던 홍콩, 그 불안이 소군을 만들었다
영화의 배경은 1986년 홍콩입니다. 당시 홍콩은 영국령에서 중국령으로 넘어가기 직전, 하나의 견고했던 체제가 다른 낯선 체제로 전환되며 사회 전체가 위태롭게 흔들리던 불안정한 과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1984년 영중공동선언으로 1997년 반환이 확정된 뒤 홍콩 사회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이 선언은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50년간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시대적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중국 본토인들은 오히려 선진화된 기회의 땅 홍콩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소군도 그중 한 명입니다. 고향에 약혼녀 소정을 두고 홀로 홍콩으로 온 그는 고모가 마련해준 공동 화장실 옆 창고 방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처음 보면 그냥 고생하는 청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제가 다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그 좁고 허름한 방이 당시 본토 출신들이 홍콩에서 갖는 위치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런 이주민의 처지를 주변화(Marginaliz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주류 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채 사회의 경계에 머무는 상태를 뜻합니다. 소군이 자전거를 '차'라고 부르며 순진하게 웃고, 맥도날드에서 동전 세는 법도 몰라 쩔쩔매는 장면들이 단순한 웃음 코드가 아니라 이 쓸쓸한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해석에 저는 꽤 공감했습니다.
당시 홍콩에서 광둥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홍콩 사회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 통행증이었습니다. 이교가 광저우 출신이면서도 홍콩 사람인 척 광둥어를 치열하게 구사한 것은 허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홍콩에서 본토 출신을 무시하는 시선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이교가 등려군 테이프를 팔다가 낭패를 보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드러납니다. 등려군을 좋아하면 본토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팬들조차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으니까요.
금지된 가수를 사랑한 사람들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등려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첨밀밀(甜蜜蜜)>이라는 제목 자체가 그녀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등려군은 대만 출신 가수로, "낮에는 등소평, 밤에는 등려군이 중국을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대만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작 중국 본토에서는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노래를 틀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법 복제 테이프가 암암리에 널리 퍼져 다들 몰래 듣고 다녔다고 하니, 금지된 존재가 가장 사랑받는 노래를 불렀다는 이 역설이 영화 전체의 정서와 기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제가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OST가 좋다는 인상만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보면서 음악이 얼마나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소군과 이교가 처음 가까워지는 장면에서 등려군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고향을 떠올리는 설정은 단순한 배경음악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멜로드라마는 음악과 상황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더욱 깊게 전달하는 장르입니다. <첨밀밀>은 과장된 신파 대신 절제된 음악으로 그 감정을 끌어올리며 균형을 유지합니다.
등려군은 1995년 43세의 나이로 태국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이교가 거리의 쇼윈도 TV를 통해 그 뉴스를 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이교의 눈물이 단순히 가수의 죽음을 향한 슬픔이 아니라, 자신의 청춘과 소군과의 기억 전체를 잃어버린 듯한 감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선악보다 시대를 먼저 보게 만드는 영화
이 영화를 단순한 불륜 이야기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가 그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는 방식이 오히려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군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우유부단하고 순진하며 시대에 떠밀린 사람입니다. 이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악을 먼저 판단하기보다, 그들이 살아간 시대와 환경을 먼저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소군과 이교의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습니다. 소군의 고모가 배우 윌리엄 홀든과 나눈 단 하루짜리 데이트를 평생의 기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에이즈에 걸린 연인을 따라 태국으로 떠나는 영어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여러 인연들이 함께 흘러갑니다. 완성되지 못한 사랑도, 짧게 스쳐 간 만남도 결국 누군가의 평생을 채우는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서브플롯들이 나란히 보여줍니다.
뉴욕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기차는 처음부터 같은 방향이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 재회입니다. 뉴욕 거리에서 낡은 TV 앞에 두 사람이 나란히 멈춰 서는 그 장면입니다. 아무 대사도, 특별한 연출도 없는데 어제 헤어진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차 장면이 바로 이 재회 직후에 이어집니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같은 기차에 있었다는 사실을 관객이 알게 되는 순간, 이 우연한 재회가 사실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다른 영화를 틀기가 싫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첨밀밀>이 제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기차를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맨 마지막에야 알려주는 이 영화의 구조 자체가, 결국 우리가 스쳐 지나간 인연을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마지막 장면까지 다 보고 나서 처음 20분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소군과 이교가 처음 마주치던 그 순간이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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