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면 먼저 망가뜨려야 했다, 《나 홀로 집에》와 《데몰리션 맨》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이 지키려는 것은 자기 집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을 지키기 시작하면서 그곳은 더 이상 평범한 집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계단과 문, 장난감과 생활용품이 모두 침입자를 막기 위한 장치로 바뀌고, 편하게 걸어 다녀야 할 공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됩니다.

《데몰리션 맨》의 미래 도시는 반대처럼 보입니다. 폭력과 범죄를 줄이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 전체를 정돈했습니다. 그런데 사이먼 피닉스가 나타나는 순간 그 안전한 질서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합니다. 결국 도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사람은 그 사회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여기는 존 스파르탄입니다.

크리스마스 가족 코미디와 미래 SF 액션을 같이 떠올릴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니 이상한 공통점이 하나 보였습니다. 안전한 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곳을 안전하게 유지하던 방식부터 깨뜨려야 했다는 점입니다.

케빈은 집을 지키려고 집의 사용법부터 바꾼다

안전한 집을 위험한 공간으로 바꾸는 방식

집은 원래 사람이 편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계단은 오르내리고, 문은 드나들고, 바닥은 넘어지지 않고 걸어 다니기 위한 곳입니다. 하지만 케빈은 해리와 마브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 기능을 하나씩 뒤집습니다.

평소에는 밟으면 혼날 장난감이 침입자를 넘어뜨리고, 문과 계단은 이동을 방해하는 장소가 됩니다. 손잡이처럼 별생각 없이 잡는 물건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습니다. 케빈이 잘하는 것은 침입자보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싸움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집을 상대가 알고 있는 집과 전혀 다른 공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집을 지키기 위해 집답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저는 이 장면들을 다시 보면 케빈이 집을 지킨다는 말이 조금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집을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은 집답지 않은 곳으로 만들어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침입자가 나간 뒤에야 그 공간은 다시 가족이 생활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미래 도시는 안전해졌지만 위험을 다루는 법까지 잃었다

피닉스가 나타나자 안전의 규칙이 멈춘다

《데몰리션 맨》의 샌앤젤레스도 안전을 위해 많은 것을 바꿔놓은 공간입니다. 폭력적인 범죄는 거의 사라졌고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까지 규칙으로 통제됩니다. 존 스파르탄처럼 거칠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그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의 인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피닉스가 풀려나자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지금까지 안전을 유지해온 규칙이 실제 위험 앞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경찰은 극단적인 폭력을 상대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미래사회의 방식만으로는 피닉스를 막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그들이 다시 꺼내는 사람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가장 부적절한 스파르탄입니다.

버렸던 스파르탄을 다시 꺼낸 이유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사회가 위험을 없앤 것과 위험에 대응하는 능력을 유지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닉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스파르탄의 방식이 불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사회는 자신이 이미 버렸던 방식에 다시 기대게 됩니다.

지키려면 먼저 평소의 규칙을 깨야 했다

지키는 방식이 같았다

두 영화가 재미있게 연결되는 건 여기입니다. 케빈은 침입자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 집의 정상적인 기능을 일부러 뒤틀어놓습니다. 스파르탄은 피닉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미래사회가 정상이라고 정해놓은 행동 방식을 계속 어깁니다.

케빈에게 계단은 더 이상 안전하게 오르내리는 장소가 아니고, 스파르탄에게 미래사회의 규칙은 반드시 따라야 할 해결책이 아닙니다. 둘 다 자신이 지키려는 곳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곳이 평소 작동하던 방법을 잠시 포기합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해 보였습니다. 지킨다는 말을 들으면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에서는 반대입니다. 그대로 두면 오히려 빼앗기거나 무너집니다. 잠시 망가뜨릴 수 있어야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안전하다는 믿음이 먼저 무너진다

두 영화의 공간은 원래 위험한 곳도 아닙니다. 케빈의 집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던 평범한 가정집이고, 《데몰리션 맨》의 미래 도시는 범죄가 거의 사라졌다고 믿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침입자가 들어왔을 때 더 당황스럽습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장소에 실제 위험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케빈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집을 바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반대로 미래사회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만든 질서 안에서 피닉스를 처리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피닉스가 그 질서의 바깥에서 움직인다는 데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 오히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약점이 됩니다.

그래서 두 영화에서 실제로 필요한 것은 더 튼튼한 문이나 더 많은 규칙이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기존의 방식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키는 쪽도 기존의 방식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지킨다는 것은 그대로 두는 일만은 아니었다

《나 홀로 집에》와 《데몰리션 맨》은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한쪽에서는 어린아이가 도둑을 상대로 집 안에 함정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과거에서 깨어난 형사가 미래 도시를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자신이 지키려는 공간을 대하는 방식에서 의외로 닮아 있습니다.

케빈은 집을 지키기 위해 집을 잠시 전쟁터로 만들고, 스파르탄은 미래사회를 지키기 위해 그 사회가 금지하고 밀어냈던 방식을 다시 사용합니다. 둘 다 안전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안전하게 만들어진 규칙부터 깨뜨립니다.

그래서 두 영화를 같이 떠올리고 나면 지킨다는 말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이 언제나 원래 모습을 손대지 않고 보존하는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 잠시 망가뜨려야 하고, 계속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지켜온 방식부터 버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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