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끼워주지 않았고, 한 사람은 너무 반겼다 — 《타이타닉》과 《겟 아웃》

《타이타닉》의 잭과 《겟 아웃》의 크리스를 같이 떠올릴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1912년 타이타닉에 올라탄 가난한 청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자친구의 부모를 만나러 교외의 집을 방문한 사진작가입니다. 시대도 장르도 상황도 전혀 다릅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니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둘 다 연인을 따라 자신이 원래 속하지 않았던 세계 안으로 들어갑니다. 잭은 그곳에서 끝까지 외부인 취급을 받고, 크리스는 반대로 지나칠 정도로 환영받습니다. 한쪽은 끼워주지 않고, 한쪽은 너무 쉽게 안으로 들입니다.

표현은 정반대인데 이상하게 같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낯선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받아들여졌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배척과 과잉 환영

《타이타닉》에서 잭은 로즈를 구한 뒤 1등실 저녁 식사에 초대받습니다. 좋은 옷도 빌려 입고 같은 식탁에 앉습니다. 잠시만 보면 그 세계가 잭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잭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바뀐 것은 아닙니다.

《겟 아웃》의 크리스는 처음부터 상황이 다릅니다. 여자친구 로즈의 부모는 그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얼마나 개방적인 사람인지 보여주려 하고, 크리스가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잭은 초대받고도 경계를 느끼는데 크리스는 경계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환영받습니다.

잭에게는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숨길 장치가 없습니다. 옷을 바꿔 입어도 출신은 바뀌지 않고, 같은 식탁에 앉아도 칼에게는 여전히 로즈의 세계에 들어온 불청객에 가깝습니다. 크리스 앞에서는 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차이를 없애려는 듯 행동하면서 계속 그 차이에 관심을 보입니다.

주말 모임에 온 사람들은 크리스를 타이거 우즈에 빗대고, 흑인의 신체에 관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꺼냅니다. 성적인 질문까지 이어지고 흑인이 유행이라는 식의 말도 나옵니다. 모두 웃으며 말을 걸지만 크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대화처럼 들리지는 않습니다. 잭을 낮춰 보는 시선과 크리스를 지나치게 관심 있게 바라보는 시선은 모양만 다를 뿐, 상대를 먼저 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연인을 따라 들어간 세계

잭이 처음부터 1등실을 원해서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로즈와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 공간에 들어갑니다. 크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미티지 가족에게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서 그 집에 간 것이 아니라 로즈의 남자친구이기 때문에 따라갑니다.

두 영화에서 연애는 단순히 두 사람을 가까워지게 하는 장치로 끝나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들어갈 이유가 없었던 공간으로 주인공을 이동시킵니다. 잭에게 로즈는 1등실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고, 크리스에게 로즈는 가족의 사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들어간 뒤 보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잭은 로즈와 가까워질수록 1등실 사람들의 계급 의식을 가까이에서 보게 됩니다. 크리스는 로즈를 믿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처음의 친절에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가까워집니다.

두 영화에서 연인의 이름이 모두 로즈라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이름이 같다고 두 인물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이타닉》의 로즈는 자신도 벗어나고 싶었던 세계 안으로 잭을 데려갑니다. 《겟 아웃》의 로즈는 크리스가 벗어나야 할 세계 안으로 그를 끌어들입니다.

없던 자리와 준비된 자리

잭은 1등실 식탁에 앉을 수는 있습니다. 그 자리가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옷을 입고 식사를 같이 해도 잠시 허락된 손님일 뿐입니다. 로즈와 가까워졌다고 해서 계급의 위치까지 함께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에게는 처음부터 자리가 너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가족은 그를 손님으로 맞고, 파티에 온 사람들은 한 명씩 다가와 관심을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 관심이 어색할 뿐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크리스가 로즈와 산책을 나간 동안 집에서는 그의 사진을 앞에 두고 빙고처럼 꾸민 무언의 경매가 진행됩니다. 크리스는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이미 선택되고 있습니다. 파티에서 사람들이 그의 몸과 외모를 유심히 바라보던 장면도 이때부터 다르게 보입니다.

잭에게 문제는 자기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에게 문제는 자리가 너무 정확하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아무리 가까이 들어가도 내부인이 될 수 없고, 다른 한 사람은 내부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미 자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두 영화를 가장 이상하게 닮아 보이게 했습니다. 잭은 그들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교적 빨리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는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이 왜 위험한지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밀어냄과 붙잡아둠

《타이타닉》에서 잭은 계속 경계 밖으로 밀려납니다. 로즈와 가까워질수록 칼의 적대도 분명해지고, 그가 1등실 안에 있을 이유 자체가 문제처럼 취급됩니다. 잭이 그 세계 안에 계속 머무는 것은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겟 아웃》에서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크리스가 떠나려고 할 때부터 그 집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선명해집니다. 처음에는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배척은 상대를 밖으로 밀어냅니다. 소유하려는 태도는 상대를 안에 붙잡아둡니다. 잭과 크리스가 겪는 일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두 경우 모두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잭은 자신이 그들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밀려납니다. 크리스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붙잡힙니다.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거절이고, 다른 한 사람에게 위험한 것은 선택입니다.

받아들여지는 방식

《겟 아웃》의 짐 허드슨은 이 차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크리스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인종 때문이 아니라 사진가인 크리스가 가진 시각을 원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그 말이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짐은 크리스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진가로서의 능력도 인정합니다. 그런 인정이 크리스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크리스의 삶 전체가 아니라 크리스에게서 가져갈 수 있는 일부입니다.

《타이타닉》의 1등실 사람들도 잭을 한 사람으로 보기 전에 그의 위치부터 봅니다. 좋은 옷을 입고 같은 식탁에 앉아도 가난한 3등실 청년이라는 자리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크리스는 반대로 그들이 원하는 특징 때문에 지나치게 관심을 받습니다.

잭은 환영받지 못했고 크리스는 분명 환영받았습니다. 어느 쪽도 상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자리를 만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한쪽은 출신으로 사람의 자리를 정하고, 다른 쪽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특징으로 사람의 가치를 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영화를 보고 같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낯선 세계가 나를 받아들이는지보다, 그 세계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하는 건 아닐까.

《타이타닉》의 잭은 끝까지 그들 편이 아니었습니다. 《겟 아웃》의 크리스는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끼워주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반겼습니다. 정반대의 태도 끝에서 두 사람은 자신이 그 세계에서 어떤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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