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해주는 사람과 대신할 수 없는 사람, 《킹스 스피치》와 《라따뚜이》
《킹스 스피치》와 《라따뚜이》를 나란히 놓으면 처음에는 별로 닮은 영화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한쪽은 말을 더듬는 영국 왕과 언어치료사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요리에 재능이 있는 쥐와 요리를 못하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시대도 분위기도 전혀 다릅니다.
두 영화를 다시 떠올리다 보니 비슷한 관계가 보였습니다. 《킹스 스피치》의 조지 6세에게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라이오넬이 있고, 《라따뚜이》의 링귀니에게는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레미가 있습니다.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정작 사람들 앞에 설 수 없다는 점도 닮았습니다.
방법을 아는 사람과 앞에 서는 사람
《라따뚜이》에서 요리를 할 줄 아는 쪽은 링귀니가 아니라 레미입니다. 레미는 재료의 맛을 구분하고 어떤 것을 섞어야 하는지도 압니다. 링귀니는 주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셰프로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 거의 없습니다. 둘이 처음 함께 요리하게 되는 순간부터 실력과 이름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나뉘어 있습니다.
《킹스 스피치》에서도 비슷한 분리가 있습니다. 조지 6세는 국민 앞에서 말해야 하는 왕이지만, 어떻게 호흡하고 어떻게 긴장을 풀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라이오넬입니다. 라이오넬은 왕의 문제를 옆에서 가장 가까이 보고 해결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아니라 왕의 목소리입니다.
두 영화에서 능력만 놓고 보면 앞과 뒤의 위치가 뒤집혀 있는 셈입니다. 가장 잘하는 사람은 뒤에 있고, 아직 혼자서는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사람이 앞에 서야 합니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그냥 앞에 서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몸을 빌릴 수 있었던 레미
《라따뚜이》는 이 문제를 아주 기발하게 해결합니다. 레미가 링귀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링귀니의 몸은 사람들 앞에 서고, 실제 판단은 모자 속에 숨어 있는 레미가 합니다. 겉으로 보면 링귀니가 요리하지만 실제로는 레미가 링귀니의 몸을 빌려 요리하는 셈입니다.
이 방법이 재미있는 이유는 실력과 이름의 불일치를 당분간 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방 사람들은 링귀니를 보고 있고 음식도 링귀니의 이름으로 나갑니다. 레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자기가 원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둘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한 사람이 실력과 자격을 모두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킹스 스피치》에서는 이런 방법이 불가능합니다. 라이오넬이 조지 6세의 입을 대신 움직여줄 수도 없고, 왕 대신 마이크 앞에 서서 국민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호흡을 알려주고 말을 끊어 읽게 하고 바로 앞에서 리듬을 잡아줄 수는 있어도, 소리를 내는 사람은 조지 6세여야 합니다.
빌릴 수 없었던 목소리
이 차이 때문에 두 영화의 조력 방식은 꽤 다르게 보입니다. 레미는 한동안 링귀니의 일을 거의 대신 해줄 수 있습니다. 링귀니가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요리할지 결정하는 쪽은 레미입니다. 둘의 협력에는 실제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을 사용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라이오넬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 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영화 마지막의 중요한 라디오 연설에서도 그는 조지 6세 바로 앞에 서 있지만 한 문장도 대신 읽어줄 수 없습니다. 연설 직전 라이오넬은 다른 것은 모두 잊고 친구인 자신에게 말하듯 하라고 합니다. 수많은 국민에게 연설해야 한다는 부담을 없앨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지 6세가 바라볼 상대를 ‘한 나라’에서 ‘한 사람’으로 바꿔준 셈입니다. 전쟁을 앞둔 국민에게 실제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람은 왕 자신입니다.
두 영화를 같이 놓았을 때 이 차이가 재미있었습니다. 레미는 링귀니의 몸을 움직여 한동안 거의 대신 해줄 수 있었지만, 라이오넬은 조지 6세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없습니다. 대신 왕이 자기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도움에는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가 있고, 그 경계가 두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숨긴 관계가 버티지 못한 순간
《라따뚜이》에서 레미와 링귀니의 방식은 오래 유지되지 않습니다. 링귀니가 요리 천재처럼 인정받을수록 실제로 요리를 하는 레미와의 간격도 커집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사람에게 명성과 기대가 쌓이는데, 그 기대를 만들어낸 능력은 모자 속 다른 존재에게 있습니다.
링귀니는 주방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밝힙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준 요리가 사실은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 순간부터 레미를 계속 숨긴 채 링귀니만 셰프로 남는 방식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레미의 능력을 빌리는 문제보다 그 능력을 누구의 것으로 말할 것인가가 더 큰 문제가 됩니다.
《킹스 스피치》에는 이런 폭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이오넬은 처음부터 조지 6세의 뒤에 있는 사람이고, 왕의 목소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영화가 갈수록 중요한 것은 라이오넬이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보다 조지 6세가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쪽으로 옮겨갑니다.
자기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자리
두 영화에서 앞에 서는 사람은 처음에는 부족합니다. 링귀니는 요리를 할 줄 모르고, 조지 6세는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이어가는 것 자체를 힘들어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이 자기 자리를 완전히 넘겨줄 수도 없습니다. 링귀니는 레미를 영원히 숨긴 채 자신이 천재 셰프인 것처럼 살 수 없고, 조지 6세는 라이오넬에게 왕의 연설을 맡길 수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자기 이름으로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영화가 조금 다르게 끝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라따뚜이》는 레미가 실제 요리사라는 사실을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 숨기지 않는 쪽으로 갑니다. 《킹스 스피치》는 라이오넬이 계속 뒤에 남아 있으면서 조지 6세가 자기 목소리로 앞으로 나가는 쪽으로 갑니다. 한쪽은 뒤에 있던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이고, 다른 한쪽은 뒤에서 받은 도움을 자기 능력으로 이어가는 방향입니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두 영화를 같이 보고 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는 일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잘하는 사람이 대신 해주면 가장 빠르고 쉬울 것 같지만, 모든 일에 그 방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대신 요리할 수 있어도 그 사실을 끝없이 숨길 수는 없고, 누군가는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되어줄 수는 없습니다.
《라따뚜이》의 레미와 《킹스 스피치》의 라이오넬은 모두 앞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인물입니다. 레미는 링귀니가 요리할 수 있게 만들고, 라이오넬은 조지 6세가 말을 이어갈 수 있게 돕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결국 상대의 자리를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링귀니는 레미 뒤에 계속 숨어 있을 수 없고, 조지 6세도 라이오넬에게 자기 연설을 맡길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쥐와 왕이라는 전혀 다른 두 영화였습니다. 나란히 놓고 보니 둘 다 비슷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내가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을 누군가가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 내 이름으로 감당해야 하는 순간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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