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플라워, 찰리의 친절에는 자신이 빠져 있었다
찰리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때마다 자기 몫을 먼저 빼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표현하면 될 텐데 그는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싫다는 뜻을 밝히는 일도 어려워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찰리의 행동을 단순히 소심함으로만 보면 빠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피하고 싶어서 물러나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처지를 민감하게 살피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선택지에서 지워 버립니다. 문제는 타인을 배려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배려에 자기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극E라고 자부하는 저도 찰리와 전혀 다르다고 자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말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필요한 순간에 자기 마음을 분명히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찰리를 몇 가지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규정하기보다, 관계 속에서 그가 무엇을 선택하고 그때 무엇을 포기하는지 따라가 보게 됐습니다.
혼자 남을 때도 자기 몫부터 뺀다
영화 초반의 찰리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군가 힘들어하거나 소외된 기색을 보이면 그 사람의 상태를 먼저 살핍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계산하기보다 상대가 불편하거나 상처받지 않을지를 앞세우는 쪽에 가깝습니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배려심 있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찰리 자신의 외로움이 남습니다. 자신도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싶고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상대의 상황을 먼저 이해하려 합니다. 관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신의 필요를 한쪽으로 밀어 놓는 셈입니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과 자신에게는 자리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것은 다릅니다. 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마음까지 함께 관계 안에 놓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찰리는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보다 자신부터 제외하는 선택을 자주 합니다. 그의 친절이 때때로 안타깝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자신을 뒤로 미룬다
샘은 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인물입니다. 이전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자리를 찾지 못했던 찰리에게 자신을 자연스럽게 받아 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꽤 큰 변화였을 것입니다. 그가 샘에게 마음이 가는 흐름도 그래서 어렵지 않게 이해됩니다.
그런데 찰리는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 듯한 순간에도 한발 물러섭니다. 여기에서 그가 놓치는 것은 단순히 연애가 이루어질 가능성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 역시 관계 안에서 다뤄질 가치가 있다고 말할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이 모습을 거절이 두려워 침묵하는 행동으로만 보면 찰리의 선택을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는 상대의 감정을 보호하려는 판단을 자신의 바람보다 앞에 놓습니다. 자신이 먼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 감정은 뒤로 밀려납니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의 충돌은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한다고 해서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샘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찰리 자신에게도 솔직해질 기회를 남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려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서 확인되어야 할 감정까지 혼자 처리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찰리를 보면서 착함과 자기 삭제는 조금 다르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함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반면 자기 삭제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아예 관계 밖에 두는 행동에 가깝습니다. 찰리는 상대를 압박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까지 함께 숨깁니다.
친구를 챙길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패트릭과 샘을 만난 뒤 찰리는 이전보다 사람들과 가까워지지만, 선택하는 방식까지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가 힘들어하면 곁을 지키고, 상대가 상처받을 가능성을 먼저 걱정합니다. 관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지금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앞세웁니다.
흥미로운 점은 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움직일 때와 자신을 위해 움직일 때 보여 주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힘들어하는 상황에서는 상대를 살피는 데 망설임이 적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필요를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갑자기 조심스러워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친절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쉽게 허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패트릭은 이런 차이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패트릭 역시 자신의 관계와 감정을 모두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찰리보다는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반면 찰리는 관계에 들어갈 때부터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 편입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면 누가 더 강한가보다, 찰리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자주 뒤로 미루는가가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혼자 남는 선택, 샘 앞에서 물러나는 선택, 친구의 필요를 먼저 살피는 선택은 서로 다른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밑에는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찰리는 상대를 배려하는 일과 자신을 제외하는 일을 거의 하나의 행동처럼 처리합니다.
덕분에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용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과 도움받고 싶은 마음은 고스란히 찰리 안에 남습니다. 상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계속 자신을 해치는 방식과 묶인다면,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시작했더라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친절의 범위에 찰리 자신은 없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자기 가치에 관한 이야기도 이 지점과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찰리의 문제를 단순히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말로 정리하면 조금 부족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관계 안에서 자신이 어느 정도의 자리를 차지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낮게 본다는 것은 추상적인 자기평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선택해야 할 순간마다 자신의 감정과 행복, 도움받을 가능성을 먼저 제외하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의 찰리는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지를 먼저 생각한 뒤 자신을 선택지에서 빼곤 했습니다. 사람을 덜 배려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배려의 범위에 자기 자신까지 들어와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도 선택 안에 남긴다
영화 말미의 찰리는 갑자기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바뀌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반복해 온 선택 방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뒤로 미루지만은 않습니다. 변화의 크기보다 방향이 중요한 순간입니다.
뒤로 갈수록 찰리는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관계 안에 남겨 둘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다른 사람을 덜 배려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 배려의 범위에 자신도 포함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찰리를 보며 말하면 될 일을 왜 말하지 못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반복해서 감당하는 선택의 비용을 따라가고 나니 처음의 판단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더 대담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감정만큼 자신의 감정에도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에게 솔직함은 성격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도 관계를 이루는 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행동에 가깝습니다.
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살피는 성향도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선택의 순간마다 자신을 완전히 제외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의 성장은 거창한 변신이라기보다 작지만 분명한 방향 전환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기 자신까지 관계 안에 남겨 두는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 저는 그 변화가 찰리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만든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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