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이겼는데 통쾌하지 않은 영화 4편
영화에서 누군가 이기는 순간은 대개 가장 기다리던 장면입니다. 괴물을 막고, 악당을 쓰러뜨리고, 오랫동안 바라던 결과를 얻습니다. 그 순간을 위해 앞의 이야기를 따라왔으니 이제 마음 놓고 좋아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분명히 이겼는데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영화가 있습니다. 승자는 정해졌는데 그 승리를 좋아하기 어렵거나,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데도 다른 것이 더 크게 남습니다. 오늘은 그런 결말이 보고 싶은 날 고를 수 있는 영화 네 편을 골라봤습니다.
원하지 않은 쪽이 이기는 결말이 보고 싶다면, 《라이프》
끝까지 인간 쪽의 생존을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가 마지막 순간 전혀 다른 승자를 보여줬을 때의 허탈함이 보고 싶다면 《라이프》가 잘 맞습니다. 데이비드는 캘빈을 자신과 함께 우주로 보내고, 미란다는 지구로 돌아가 구조를 기다리려 합니다. 마지막까지 계획대로 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떨어진 캡슐 안에 있던 것은 캘빈과 데이비드였습니다. 미란다는 오히려 우주로 멀어지고 있고, 어부들은 캡슐을 열지 말라는 데이비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캘빈의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승리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제거하려던 계획을 뒤집고 살아남았고, 결국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영화 내내 그 승리를 바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누군가 이겼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원하지 않은 존재가 이겼다는 사실이 더 크게 남습니다.
승리는 왔는데 정의가 늦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암살》
원하던 결과를 얻었는데도 마음이 다 풀리지 않는 결말이 보고 싶다면 《암살》이 잘 맞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바라던 독립은 결국 현실이 됩니다. 일제강점기는 끝나고 해방된 나라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염석진은 새로운 시대에도 살아남습니다. 친일 행적을 지우고 자신을 독립운동가처럼 꾸미고, 반민특위 재판정에 서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습니다. 시대는 분명 바뀌었는데, 그 시대를 배신했던 사람까지 동시에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마지막에 안옥윤과 명우가 염석진을 찾아가면서 뒤늦은 응징이 이루어집니다. 그 장면은 분명 통쾌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직접 총을 들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앞선 해방의 승리가 완전히 개운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원했던 승리는 왔지만 정의는 같은 날 도착하지 않은 이야기가 보고 싶을 때 고를 만한 영화입니다.
이기려면 지키던 것까지 버려야 하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악당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내가 믿던 것을 포기하는 쪽이 더 크게 남는 히어로 영화를 보고 싶다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맞습니다. 캡틴과 동료들은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막는 데 성공하고, 세 대의 헬리캐리어도 결국 추락합니다. 결과만 보면 세상을 구한 명백한 승리입니다.
하지만 캡틴이 돌아갈 곳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SHIELD 내부에 히드라가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조직의 비밀까지 세상에 공개되면서 SHIELD 자체가 사실상 무너집니다. 적만 제거하고 원래 조직으로 돌아가는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헬리캐리어가 폭발하는 장면은 승리의 불꽃놀이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돌아갈 곳이 사라지는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적을 이기려면 자신이 지키던 체제까지 버려야 하는 승리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가 가장 잘 맞습니다.
이 영화의 액션 자체가 궁금하다면 윈터솔저, 엘리베이터와 도로에서 달라지는 캡틴의 전투 방식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평화를 지켰는데 진실을 버려야 하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다크 나이트》
악당을 막는 데 성공했는데도 마지막 장면에서 승리감보다 씁쓸함이 더 크게 남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다크 나이트》가 잘 맞습니다. 배트맨은 조커의 계획을 끝까지 막아내고, 고담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도 막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도시를 지켜낸 쪽은 배트맨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비 덴트는 무너집니다. 고담이 새로운 희망으로 바라보던 검사는 투페이스가 되고, 마지막에는 그가 저지른 일까지 세상에 알려질 상황에 놓입니다. 문제는 하비의 진실이 드러날 경우 그를 믿고 유지되던 도시의 희망과 질서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하비가 저지른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기로 합니다. 도시를 지켰지만 영웅으로 남을 수는 없고, 오히려 경찰에게 쫓기는 사람이 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악당을 물리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결말과는 정반대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이 단순히 배트맨이 희생했다는 이야기보다 더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담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겼지만 그 승리를 유지하려면 자신의 이름과 진실까지 버려야 하는 결말이 보고 싶다면 《다크 나이트》가 잘 맞습니다.
오늘 끌리는 찜찜함으로 고르면 된다
네 영화는 모두 누군가 이겼지만, 보고 난 뒤 남는 감정은 꽤 다릅니다. 《라이프》는 승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고, 《암살》은 승리 뒤에도 해결되지 않은 정의가 남습니다. 《윈터 솔져》는 이기는 대신 자신이 믿었던 곳까지 잃고, 《다크 나이트》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진실과 자신의 이름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오늘 어떤 영화가 끌리는지는 결국 어떤 종류의 찜찜함을 보고 싶은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뒤통수를 맞는 결말이 보고 싶다면 《라이프》, 시대가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는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암살》, 세상을 구하고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히어로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윈터 솔져》 쪽입니다. 영웅이 이겼는데도 스스로 악당처럼 남아야 하는 결말이 당긴다면 《다크 나이트》를 고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이겼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 남은 것이 더 오래 기억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승자가 누구인지보다 그 승리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가 먼저 보이는 순간도 있습니다. 통쾌한 결말보다 조금 다른 여운이 필요한 날이라면, 이 네 편 중 하나를 골라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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