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두고 떠나는 성장 — 《굿 윌 헌팅》

마지막에 윌은 램보가 마련한 직장으로 곧장 향하지 않습니다. 한때 두려움 때문에 밀어냈던 스카일라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이 선택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가 다시 이어질지, 낯선 곳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에 출발이 중요해 보입니다. 윌은 안전하게 실패를 피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결과를 알 수 없는 길을 택합니다.

그런데 영화 앞부분의 윌을 떠올리면 이 마지막 행동은 조금 이상합니다. 그는 면접에는 친구를 대신 보내고, 상담사들의 약점을 찾아 관계를 깨뜨리고, 스카일라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했을 때도 독한 말로 먼저 밀어냈던 사람입니다. 선택해야 할 순간마다 선택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만들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스스로 목적지를 정합니다.

그렇다면 윌은 왜 마지막에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윌은 기회가 없어서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윌은 자신을 도우려는 상담사들의 약점을 재빨리 찾아내 조롱합니다. 상대가 자신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면 상담이 실패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면접에는 친구를 대신 보내 버리고, 스카일라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했을 때도 마음을 내보이기보다 독한 말로 관계를 끊어냅니다.

겉으로 보면 오만함, 장난, 무책임이 제각각 이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방향은 비슷합니다. 선택해야 할 순간이 가까워질 때마다 윌은 선택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만듭니다.

새로운 직장과 사랑은 그에게 좋은 미래인 동시에 잃을 수도 있는 대상입니다. 먼저 거절하면 버림받지 않아도 되고, 진지하게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한 자신을 확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익숙한 친구들과 동네에 머무는 삶은 가능성을 좁히지만 적어도 다음에 일어날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윌은 문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열린 문을 통과한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쪽에 가깝습니다.

이 사실을 놓고 보면 램보가 윌에게 하는 일도 다르게 보입니다. 램보가 조급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MIT 복도에 적어 둔 어려운 문제를 청소부로 일하던 윌이 풀어낸 순간, 그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재능을 발견합니다. 반면 윌은 싸움을 벌이고 경찰관을 때린 뒤 법정에 섭니다. 그대로 두면 재능뿐 아니라 삶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램보는 윌이 법적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함께 수학을 연구하며 상담을 받게 합니다. 그의 능력을 써볼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도 마련합니다. 램보가 생각하는 책임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가능성이 실제 삶의 경로가 되게 만드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문제는 그 경로가 너무 빨리 정답이 된다는 점입니다. 램보에게 좋은 직장은 윌이 마땅히 도달해야 할 미래처럼 보입니다. 탁월한 능력을 세상에 쓰지 않는 선택은 낭비로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요. 윌의 재능을 귀하게 여길수록 정작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뒤로 밀립니다. 램보의 도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지만, 받는 사람이 준비되었는지보다 기회의 가치가 먼저 놓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램보가 더 좋은 기회를 내밀수록 윌은 앞으로 나가기보다 방어를 강화합니다. 이 지점에서 램보의 조급함은 이해되면서도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는 윌이 기회를 걷어차는 모습을 재능을 스스로 버리는 일처럼 받아들입니다.

숀은 윌의 방어를 없애기보다 그 안에 남았다

숀은 다른 곳에서 출발합니다. 좋은 기회를 부정하지도 않고 윌의 능력을 하찮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상처를 건드리는 순간 관계를 끊고 달아나는 사람에게 진로부터 정해준다고 변화가 시작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숀과의 첫 만남에서도 윌은 익숙한 방법을 씁니다. 숀의 책과 그림을 살피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관한 상처까지 건드려 그를 흔듭니다. 숀은 화를 냅니다. 하지만 관계를 끝내지는 않습니다. 다음 만남에 다시 나타나고 그다음에도 자리를 지킵니다.

윌에게 중요했던 것은 상담사가 자기보다 더 영리한 반박을 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이 상대를 밀어냈는데도 그 사람이 다시 왔다는 경험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숀은 윌의 지식을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익힌 말과 실제로 사랑하고 잃어 본 삶 사이의 거리를 짚어주고, 때로는 침묵도 그대로 둡니다. 윌이 입을 다문다고 곧바로 정답을 대신 채우지도 않습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윌이 세워 둔 전제도 조금씩 흔들립니다. 가까워지면 상대는 결국 떠날 것이고, 약점을 보이면 공격받을 것이며,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신이 먼저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숀이 과거의 상처가 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의 말을 되풀이하는 장면도 한 번의 명쾌한 조언이라서 힘을 얻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 말을 건네기 전까지 숀은 여러 차례 돌아왔고, 윌이 공격하거나 침묵해도 관계를 이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 말은 갑자기 나온 위로가 아니라, 숀이 계속 곁에 남아 있었던 시간 끝에 나온 말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밀어내던 윌도 결국 감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설득에 패배한 순간이라기보다, 방어하지 않아도 이 관계가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던 사춘기 시절, 주변 어른들에게서 들은 말은 하나같이 “니가 잘해라”였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때라 그 말은 책임을 전부 다시 돌려받는 것처럼 공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숀이 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의 말을 거듭 전하는 장면에서 처음 봤을 때도 울었고, 다시 볼 때도 비슷했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원인을 혼자 짊어질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숀의 도움은 윌에게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는 순간보다, 그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곁에 남아 있는 순간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램보와 숀의 논쟁은 어느 한쪽이 윌을 더 아끼는지를 가리는 싸움이 아닙니다. 램보는 재능을 방치하지 않으려 하고, 숀은 재능이라는 이유로 또다시 윌의 삶이 타인의 계획이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두 어른의 차이는 재능을 인정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윌의 삶에서 마지막 결정을 누가 내려야 하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목적지가 아니라 선택한 사람이 보인다

램보가 마련한 기회는 윌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자기 삶으로 만들려면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권리도 윌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윌 자신이 고른 것이 아니라면, 그에게는 또 다른 사람이 정해 준 삶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숀이 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질문은 직업 목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머리와 거친 행동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을 앞으로 불러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윌은 오랫동안 자신의 능력을 숨기거나 타인의 기대를 비웃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지켜 왔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모든 제안을 거절해서 통제권을 유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무언가를 원한다고 인정하고, 그것을 선택했을 때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까지 받아들이는 쪽입니다.

친구들의 역할도 이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익숙한 동네는 윌이 숨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곳의 관계가 모두 정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친구 역시 윌이 자신의 가능성을 외면한 채 지금 자리에 머무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램보가 제도와 직업의 문을 열고 숀이 결정권을 돌려준다면, 친구들은 윌이 익숙함을 이유로 계속 숨어 있지 못하게 만듭니다. 서로 방식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 도움들이 윌 대신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기에 마지막 선택도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다시 마지막으로 돌아오면, 윌이 캘리포니아로 향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누가 그 목적지를 정했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램보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의 도움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램보는 윌의 능력을 발견하고 현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숀은 그 문들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갈지를 윌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버텼습니다.

저에게는 마지막 장면이 두 도움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해 주는 것과 그 가능성을 어떻게 쓸지 대신 정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차를 몰고 보스턴을 벗어나는 윌은 더 이상 면접을 장난으로 무효로 만들거나 사랑을 먼저 밀어내지 않습니다. 남이 정한 성공을 증명하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으로 자신이 고른 사람과 방향을 향해, 실패할 수도 있는 길 위에 올라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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