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맨이 보여주는 또 다른 삶의 선택지
13년 전, 잭은 자신을 붙잡는 케이트를 뒤로하고 런던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 선택 끝에 그는 뉴욕의 펜트하우스와 고급 스포츠카, 월스트리트에서 인정받는 투자 전문가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케이트와 결혼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고, 출근할 곳도 화려한 사무실이 아니라 타이어 가게입니다.
패밀리맨은 어느 삶이 더 행복한지 곧바로 판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사람이 선택하지 않았던 삶을 직접 살아보게 하며 질문을 던집니다. 잭이 본 것은 더 나은 인생이었을까요. 아니면 성공하는 동안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가치였을까요.
선택하지 않은 삶을 직접 살아본다면
잭이 비행기에 오른 뒤 얻은 성취는 결코 가짜가 아닙니다.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걸어 높은 지위와 경제적 자유를 손에 넣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넓은 집과 값비싼 물건도 단순한 허영의 표시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택한 길에서 실제로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그의 삶이 부러웠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돈과 능력, 선택권을 모두 가진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볼 만한 성공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잭에게 갑자기 주어진 가족의 삶은 정반대입니다.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는 아침도 낯설고, 출근길의 교통 체증도 답답하며, 타이어 가게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원래의 삶에서 익숙했던 영향력과 선택권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삶에도 성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없고,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그의 관심은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는 잭의 부유한 생활을 잘못된 선택으로 몰아붙이기보다, 그가 무엇을 얻는 동안 어떤 관계가 그의 삶에서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가족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도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진 행복은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을 얻는 대신 시간과 책임을 나누고, 자신의 뜻대로만 움직일 수 없는 순간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경제적인 제약과 반복되는 의무도 생깁니다.
결국 두 삶은 풍요와 결핍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잭에게는 성취와 자유가 있지만 오래 이어진 관계가 부족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잭에게는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만 경제적인 제약과 반복되는 의무가 있습니다. 어느 쪽도 아무런 대가 없이 완성되는 삶은 아닙니다.
그 차이를 잭이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곳이 평범한 일상입니다. 처음에는 가족의 리듬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집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도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거창한 사건 하나가 잭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홈비디오를 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의 일상 속에 자신이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남의 삶처럼 보였던 하루가 점차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것은 잭이 ‘가족이 최고다’라는 교훈에 감동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기억들을 처음 경험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 그의 판단 기준에 들어 있지 않았던 시간이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빈자리를 단순히 돈의 반대편에 있는 ‘따뜻함’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오래 함께한 사람만이 기억하는 시간, 일의 성과와 상관없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관계,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기억에 더 가깝습니다.
저도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당연하게 넘긴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기억에 남는 건 의외로 특별한 여행이나 비싼 식사가 아니라 같이 밥을 먹으면서 나눈 시시한 대화였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계속 났습니다.
당시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간 시간이 나중에는 관계를 설명하는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잭에게 가족의 홈비디오와 평범한 하루가 중요한 이유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말보다,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남을 수 있었던 시간 자체가 그를 흔듭니다.
그렇다고 이 경험이 잭의 원래 삶을 무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는 투자 전문가로 살아오며 갖게 된 판단력과 추진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능력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삶의 모든 부분을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겼던 시선에 있었습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잭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기보다, 자신의 기준에서 빠져 있던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 성공과 가족 가운데 하나만 옳아서가 아니라, 한쪽의 가치만 알고 내린 판단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삶을 모두 본 뒤에도 정답은 생기지 않았다
케이트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선택을 희생이라는 한 단어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잭과 다른 길을 걸었던 현실의 케이트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삶의 케이트는 서로 다른 시간과 우선순위 속에 있습니다. 어느 쪽이 진짜 케이트의 삶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같은 사람에게도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판타지는 한쪽을 지우고 다른 쪽을 선택하게 만드는 장치라기보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선택의 반대편을 잭에게 보여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경험했다고 해서 경제적 자유와 선택권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 가족의 삶에 떨어진 잭이 답답함을 느낀 이유도 그가 원래 누리던 것들이 실제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두 삶에는 각각 얻는 것과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잭이 경험한 판타지는 ‘돈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도 자신이 알지 못했던 가치와 비용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가족의 삶이 사라진 뒤 잭이 케이트를 찾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 체험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삶을 케이트에게 그대로 증명할 수도 없고, 두 사람이 지나온 13년을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잭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보았던 가능성을 말하고, 지금의 케이트에게 다시 대화를 청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은 ‘성공한 삶을 버리고 가족을 선택했다’는 결론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가까워진다고 해도 판타지 속에서 보았던 가족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잭에게는 이미 쌓아 온 삶이 있고 케이트에게도 자신의 시간이 있습니다.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면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무언가를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가 그 이후를 완성된 가족의 모습으로 보여주지 않는 것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잭이 얻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생긴 상태에 가깝습니다.
영화 초반의 잭은 자신이 얻은 결과만 보고 과거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의 잭은 처음으로 자신이 얻지 못했던 것의 가치까지 생각합니다. 그의 변화는 가족을 선택했다고 선언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성공이라는 기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삶의 가능성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는 데 있습니다.
패밀리맨은 성공을 후회하게 만드는 영화도 아니고, 가족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라고 말하는 영화도 아닙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얻은 것만 바라보느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무엇이 있었을지 잊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잭의 성공이 먼저 보였습니다. 다시 봤을 때는 케이트가 살아온 다른 삶이 눈에 들어왔고, 또 시간이 지나 보니 아이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가 오래 남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제가 삶의 어느 자리에 있는지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영화를 찾는 사람뿐 아니라, 한 해 동안 자신이 얻은 것과 놓친 것을 함께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습니다. 화려한 판타지를 기대하기보다 잭이 두 삶에서 각각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가 남기는 여운도 달라집니다.
이 영화가 건네는 것은 정답이라기보다 한 번쯤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볼 기회입니다. 지금 가진 성취를 깎아내릴 필요도 없고, 선택하지 않은 삶을 무조건 더 아름답게 상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한 해가 끝나갈 때쯤, 내가 열심히 얻어 온 것들 사이에서 너무 오래 미뤄 둔 사람과 시간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다시 꺼내 볼 만한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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