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어퓨굿맨

재판이 끝난 뒤 다우니 일병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느냐는 듯 혼란스러워합니다. 두 사람은 상관의 명령을 수행했고, 실제로 그런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도 법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도슨 상병의 반응은 다릅니다. 이제는 ‘명령을 따랐다’는 말로 자신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지켜야 했던 산티아고를 해쳤다는 쪽을 바라봅니다.

《어퓨굿맨》 하면 보통 제셉 대령과 캐피 중위가 맞붙는 법정 장면부터 떠오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장면이 가장 강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하게 재판이 다 끝난 뒤의 짧은 대화가 더 걸렸습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은 따로 있는데, 명령을 받은 사람에게도 책임이 남는 걸까. 영화는 마지막에 꽤 불편한 질문을 하나 남깁니다.

명령이 있었다고 책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에서 산티아고가 사망하고, 코드 레드를 실행한 도슨과 다우니가 기소됩니다. 두 사람은 산티아고에게 개인적인 악의를 품고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은 부대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죄 협상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군인에게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 때문에 두 사람을 보면서 판단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시킨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산티아고를 공격한 행동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명령은 제셉 쪽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그 명령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도슨과 다우니였습니다.

이 부분을 보다가 예전에 새 업무를 맡았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일이어서 모르는 게 많았고, 전임 담당자가 해오던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이전부터 계속 그렇게 해왔다고 하니 저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참 진행하고 나서 그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방향을 다시 잡고 이미 처리한 것들을 수습하느라 꽤 오래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억울한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내가 만든 방식도 아닌데 싶었고, 원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이걸 내가 수습해야 하나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로 끝낼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전임자가 그렇게 했든,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든 지금 그 업무를 맡은 사람은 저였습니다. 잘 모르면 한 번 더 알아봤어야 했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그때 ‘관행대로 했다’는 말이 생각보다 좋은 변명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회사 업무에서 잘못된 관행을 따른 경험과 영화 속 폭력적인 군 명령을 같은 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규모도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그래도 ‘내가 만든 일이 아니니까 내 책임도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쉬운 점에서는 도슨의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제셉의 책임과 도슨의 책임은 같지 않다

그렇다고 도슨과 제셉을 똑같이 볼 수는 없습니다. 제셉은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고,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코드 레드를 실행하게 한 사람입니다. 책임의 무게가 같을 리 없습니다.

제셉은 자신이 국가와 부대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을 했다고 확신합니다. 위험한 곳을 지키는 군대에는 강한 규율이 필요하고,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도 보입니다. 그 말만 떼놓고 보면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규율이 필요하다는 것과 부하에게 비공식적인 폭력을 지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이 둘을 조금 섞어서 봤던 것 같습니다. 제셉에게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것과 그 행동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오히려 제셉의 책임이 분명해지고 나서부터 영화가 더 재미있어집니다. 보통이라면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밝혀졌으니 도슨과 다우니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쪽으로 끝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퓨굿맨》은 그렇게 끝내지 않습니다. 제셉이 잘못했다고 해서 도슨이 한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결 뒤 도슨의 반응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제셉의 책임이 밝혀졌는데도 그는 그 사실을 자기 책임에서 빠져나갈 이유로 쓰지 않습니다.

복종보다 먼저였어야 할 것

도슨은 군인의 명예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계급을 지키고 규율을 따르는 것, 그것이 좋은 군인의 모습이라고 믿습니다. 산티아고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 틀 안에 있습니다. 부대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으로 봅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더 씁쓸합니다. 도슨은 결국 자신들이 지켜야 했던 사람도 산티아고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명령을 잘 따랐는지가 먼저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군인의 명예라는 말도 처음과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는 사람이 명예로운 군인인지, 아니면 눈앞의 약한 동료를 지켜야 할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군인인지. 영화가 정답을 길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도슨의 태도가 달라진 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지막 경례

영화 초반 도슨은 캐피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캐피가 사건을 적당히 협상해서 끝내려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캐피 역시 처음부터 정의감으로 불타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사건에 깊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리고 재판이 모두 끝난 뒤 도슨은 캐피에게 경례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자신을 위해 애써준 변호사에게 보내는 감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초반의 도슨이라면 계급과 군복을 먼저 봤을 텐데, 마지막에는 누가 실제로 자기 역할을 했는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캐피가 장교라서 하는 경례라기보다는, 끝까지 자기들을 변호한 사람에게 하는 경례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 짧은 행동 안에 도슨도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퓨굿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만 고르라면 법정에서 제셉이 무너지는 장면보다 이쪽을 고를 것 같습니다. 악한 명령을 내린 사람을 찾아내는 것으로 사건은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따랐던 사람이 자기 행동을 돌아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도슨은 결국 그 두 번째 문제까지 마주합니다. 아마 그래서 마지막 경례가 짧은데도 오래 남았던 것 같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슬픔이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는데 — 《인사이드 아웃》

월플라워, 찰리의 친절에는 자신이 빠져 있었다

어바웃 타임, 결혼식이 끝났는데 한 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