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남은 이름, 로웬스타인 — 《사랑과 추억》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톰은 수잔 로웬스타인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가족에게 돌아갔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닌데 왜 그 이름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남았을까요.
밤늦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만난 《사랑과 추억》 때문에 자정을 훌쩍 넘긴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로맨스라고 생각했지만 결말에 이르자 마음에 남은 것은 사랑의 성패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두 사람이 헤어진 데 대한 아쉬움이 컸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려 보니, 톰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선택과 로웬스타인의 이름이 동시에 남는다는 사실이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 이름은 상처를 말할 수 있게 된 관계에서 생겼다
뉴욕에 온 톰은 위기에 빠진 쌍둥이 여동생 사바나를 돕기 위해 정신과 의사 수잔 로웬스타인을 만납니다. 수잔은 사바나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가족의 과거를 묻지만, 톰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가족의 치부를 낯선 사람에게 왜 밝혀야 하느냐는 그의 거부감은 완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저 역시 감추어 둔 일을 말로 옮기는 순간 오히려 더 또렷해질까 두려웠던 적이 있어, 그 침묵이 단순한 고집으로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톰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기억 뒤에는 가족이 오랫동안 함께 감춰 온 일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세 남매는 서로에게 의지했고, 어린 시절 겪은 끔찍한 사건 역시 말해서는 안 되는 비밀처럼 묻혀 있었습니다. 사건을 하나하나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중요한 점은 분명합니다. 가족은 견디기 위해 입을 닫았고, 그 침묵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바나와 톰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수잔 앞에서도 톰은 그 기억을 한꺼번에 털어놓지 못합니다. 질문을 피하고 빈정거리다가 조금씩 과거를 꺼냅니다. 그렇다고 한번 말한 뒤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톰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달라지는 것은 그 기억을 혼자 감추는 방식입니다. 수잔은 톰의 과거를 없애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가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함께 바라본 사람이 됩니다.
상담실 밖에서도 두 사람의 삶이 겹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가족사를 묻고 답하는 데서만 깊어지지 않습니다. 톰이 수잔의 아들 버나드에게 풋볼을 가르치는 시간도 둘의 삶을 상담실 밖으로 끌어냅니다. 톰은 버나드와 함께 몸을 움직이고 자신이 잘하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수잔과 이야기할 때 톰이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꺼냈다면, 버나드와 있을 때는 다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공을 던지고 자세를 봐주며 한 아이와 시간을 보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모습도 이때 나타납니다.
수잔 역시 톰을 일방적으로 고치는 위치에만 머물지는 않습니다. 그녀에게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긴 외로움이 있고, 톰은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게 됩니다. 서로 감추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되는 시간이 쌓이면서 두 사람은 상담을 위한 만남을 넘어 개인적인 감정을 나누게 됩니다.
그래서 둘의 관계를 아름다운 사랑 하나로만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각자 돌아가야 할 삶이 있고, 이미 맺고 있는 관계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 조건만으로 둘 사이에서 실제로 생긴 감정까지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이 단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떠나지 않는 선택에도 비용은 남는다
톰의 결혼은 뉴욕에 오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내 셀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상황에서 사바나의 위기까지 겹치고, 톰은 삶의 여러 부분이 동시에 흔들리는 시간을 지나갑니다. 그런 때 만난 수잔은 그가 오랫동안 숨겨 온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톰은 아내와 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 귀환을 단순한 원상 복구라고 보기에는 뉴욕에서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톰은 가족 안에서 감춰 왔던 과거를 입 밖으로 꺼냈고, 자신의 어머니와도 그 기억을 마주합니다. 수잔과 버나드의 삶에 들어갔다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돌아간다는 행동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한쪽을 선택했다고 해서 다른 쪽에서 생긴 감정까지 같은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에게 돌아갔다고 수잔과의 시간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잔을 사랑했다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선택까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톰에게 남는 것은 그 둘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삶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 이전에 만난 사람과 나눈 시간까지 지우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가족에게 돌아온 톰의 모습에서 그대로 끝났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이름은 지워지지 않은 관계의 흔적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톰이 수잔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에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는 모습도 끝내 놓지 못한 사랑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이름은 단순한 미련보다 조금 더 복잡하게 들렸습니다.
톰은 이미 돌아갈 곳을 선택했습니다. 수잔에게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가족을 떠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로웬스타인이라는 이름은 남습니다. 선택이 끝났다고 감정까지 같은 순간에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수잔은 톰이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기억을 함께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톰 역시 그녀와 버나드의 삶에 들어가 한동안 그들의 일상 일부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결국 다른 자리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 시간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은 이름을 이제는 치유되지 못한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야 할 사랑의 이름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톰이 뉴욕에서 지나온 시간과 그 안에서 달라진 자신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이름에 더 가깝습니다.
밤늦게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두 사람이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함께하지 않는데도 한 사람의 이름이 남았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걸립니다. 톰은 가족에게 돌아갔고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갑니다. 그 선택을 뒤집지 않으면서도 마지막에는 한때 자신의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어 주었던 사람을 떠올립니다.
로웬스타인. 마지막에 남은 그 이름은 톰이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기보다, 돌아온 뒤에도 지워지지 않은 한 시기의 흔적처럼 들립니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지나간 뒤 무엇이 남는지를 이름 하나로 끝까지 남겨 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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