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의 두 사람은 정말 우연히 만난 걸까
1986년 3월 1일, 홍콩에 도착한 기차 안.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서로를 모른 채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습니다. 《첨밀밀》은 이 장면을 시작이 아니라 맨 마지막에 보여줍니다. 소군과 이교가 10년에 걸쳐 만나고 헤어진 뒤 뉴욕에서 다시 마주친 다음에야, 두 사람이 홍콩에 도착할 때부터 같은 기차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놓습니다.
이 순서를 알고 다시 보면 첫 만남의 표정도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두 사람의 사랑을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라고 확정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 기차 장면은 이미 지나온 시간을 거꾸로 비추며, 수많은 우연이 뒤늦게 하나의 필연처럼 보이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저도 처음 봤을 때는 마지막 재회를 운명적인 결말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번 다시 보고 나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두 사람이 특별해서 처음부터 같은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미 그들의 10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처음의 우연까지 특별하게 보이는 것인지 쉽게 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다
소군은 고향에 약혼녀 소정을 남겨두고 홍콩으로 옵니다. 고모가 마련해 준 좁은 방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익숙한 규칙 하나 없는 도시를 하나씩 배워 갑니다. 다시 봤을 때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도 그 방이었습니다. 단순히 가난한 청년의 고생을 보여주는 배경이라기보다 도시 안에 들어왔지만 아직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의 위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차라고 부르며 웃고, 맥도날드에서 동전을 세는 일에도 서툰 모습은 그의 순진함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하는 사람의 처지도 드러냅니다. 홍콩은 이미 도착한 장소지만 소군에게는 아직 익숙한 생활이 아닙니다.
이교는 같은 이주민이면서 소군보다 훨씬 빠르게 도시의 규칙을 익힌 사람처럼 보입니다. 소군이 낯선 도시의 바깥에 머문다면 이교는 안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속 자신을 조정합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영리함이나 허세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란히 놓고 보면 둘 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방법을 택한 것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속도로 홍콩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소군은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천천히 적응하고, 이교는 더 빨리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같은 외로움이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들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 달라 계속 어긋납니다. 소군에게는 고향에 남겨둔 약속이 있고, 이교에게는 이 도시에서 붙잡고 싶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불륜이라는 한 단어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약혼녀가 있는 소군이 이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그 선택으로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는 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는 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낯선 도시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오래 보여줍니다.
소군의 고모가 짧았던 만남을 평생의 기억으로 간직하는 이야기처럼, 이 영화의 주변에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는데도 한 사람의 이후를 채우는 관계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을 지나고 나면 소군과 이교의 10년도 성공한 사랑과 실패한 사랑 가운데 하나로만 정리하기 어려워집니다.
이교가 등려군의 테이프를 팔려다 뜻대로 되지 않는 장면도 두 사람이 이 도시에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슬쩍 드러냅니다. 이교에게 익숙하고 소중한 음악이 이곳에서는 기대한 만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군과 이교 사이에서는 바로 그 노래가 둘이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됩니다.
처음 봤을 때는 OST가 좋다는 인상이 가장 컸습니다. 여러 번 보니 음악이 두 사람의 감정을 대신 말하는 방식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가까워지는 순간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노래는 분위기를 꾸미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둘이 두고 온 곳을 동시에 불러내고, 서로에게서 비슷한 외로움을 알아보게 합니다.
홍콩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순간이 생기지만, 정작 두 사람을 가까워지게 한 것도 그 과거입니다. 그래서 음악이 흐를 때의 친밀함에는 기쁨과 불안이 함께 있습니다.
한 노래가 10년 전의 사람을 다시 불러낼 때
시간이 흐른 뒤 이교는 뉴욕 거리의 TV 화면에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접합니다. 그녀가 화면 앞에 멈춰 서는 순간, 홍콩에서 들었던 노래와 그 시절의 기억도 함께 돌아옵니다.
제게 그 눈물은 한 가수를 향한 애도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군과 가까워졌다가 멀어진 시간, 홍콩에서 버티던 젊은 날, 둘이 함께 듣던 음악까지 한꺼번에 현재로 돌아오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노래가 관계를 그대로 보존해 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지나 잊고 있던 시간에 다시 손을 대게 합니다.
그리고 10년 뒤, 홍콩에서 함께 듣던 목소리가 뉴욕에서 두 사람을 다시 멈춰 세웁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이 재회입니다. 긴 설명이나 감정을 확인하는 대사 없이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는 얼굴만 남습니다. 오랜 시간을 돌아온 사람들이면서도 어제 헤어진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순간이라 볼 때마다 마음이 오래 머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재회가 이루어진 뒤 화면은 1986년의 기차로 돌아갑니다. 관객은 두 사람이 처음 인사를 나누기 전부터 같은 칸에 있었고, 서로를 모른 채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과거에 새로운 사건이 추가된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은 그때도 서로를 몰랐고, 기차는 그냥 같은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바뀐 것은 관객이 그 장면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이미 우리는 좁은 방과 맥도날드, 등려군의 노래와 헤어짐, 뉴욕의 시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시 만난 기차는 처음의 기차와 같은 장면인데도 같게 보이지 않습니다. 뉴욕의 재회가 첫 장면을 특별하게 만들고, 첫 장면은 다시 뉴욕의 재회를 오래 준비된 일처럼 보이게 합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두 사람이 결국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조금 망설이게 됩니다. 기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의 10년이 정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번 엇갈렸고, 각자 다른 사람을 선택했으며,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그 첫 우연을 아무 의미 없는 사건으로 다시 돌려놓기도 어렵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한동안 다른 영화를 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정답을 알려줘서가 아니라, 이미 다 봤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차는 처음부터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10년까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처음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두 사람의 거리가 전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연은 바뀌지 않았는데, 그 뒤에 쌓인 시간이 우연의 모양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첨밀밀》을 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지막 장면보다 첫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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