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하트·왕의 귀환·엔드게임, 돌격 직전 무엇을 쌓아 두었나

처음 《브레이브 하트》를 봤을 때 저는 아직 어린아이였습니다. 기병 수십 마리가 천둥처럼 달려오는 화면 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었고, 할머니가 “영화니까 괜찮다”고 몇 번이나 달래주셔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가장 선명한 것은 충돌 자체보다 그 직전의 기다림입니다. 말발굽 소리는 가까워지는데 농민 병사들은 자리를 지켜야 하고, 월레스는 조금만 더 버티라고 사람들을 붙잡습니다.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로한 기마대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전투에도 비슷한 시간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직전, 영화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인물들의 결심과 관객의 기억을 한곳에 모읍니다. 세 장면 모두 결국 앞으로 달려가지만 이상하게도 느껴지는 감정은 같지 않습니다. 차이는 돌격의 규모보다 그 직전까지 무엇을 쌓아 두었느냐에 있었습니다.

공포를 붙잡아 두는 월레스의 기다림

《브레이브 하트》의 스털링 전투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용맹한 공격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상대 기병은 속도를 올리고, 월레스 쪽에 선 이들은 눈앞의 광경만으로도 겁에 질릴 만합니다. 여기서 월레스는 병사들이 너무 일찍 움직이지 않도록 계속 기다리게 합니다. 적과의 거리는 빠르게 줄어드는데 대열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기다림 때문에 관객도 병사들과 함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월레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움직임이 시작됐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통쾌함과 조금 다릅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공포를 끝까지 받아낸 뒤 그 힘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주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먼저 공격하는 용기보다 도망치지 않고 버틴 시간이 저항의 힘을 만듭니다.

어린 시절에는 말들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물리적인 위압만 느꼈습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니 다른 부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말들이 창에 걸려 쓰러지는 순간 병사보다 말이 먼저 안타까웠습니다. 선택권 없이 전쟁에 끌려온 동물이 충돌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이 보이자 예전의 통쾌함에도 씁쓸함이 섞였습니다. 같은 장면인데 제가 두려워하고 바라보는 대상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패배가 보여도 앞으로 가는 로한의 결의

《왕의 귀환》에서 로한 기마대가 펠렌노르 평원에 도착했을 때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이들은 숨어서 적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전장의 규모를 직접 바라봅니다. 상대가 얼마나 많은지, 자신들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가 이미 보입니다.

세오덴은 병사들 앞으로 나아가 창을 차례로 두드리며 흩어져 있던 대열의 마음을 하나로 모읍니다. 병사들의 응답이 이어지면서 두려움이 사라졌다기보다 각자가 감당해야 할 것을 함께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승리를 확신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이라기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돌격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가깝습니다.

월레스가 병사들에게 공포를 조금 더 견디게 한다면 세오덴은 공포를 본 상태에서 선택을 끝내게 합니다. 한쪽은 가까워지는 적 앞에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을 붙잡았다가 저항으로 뒤집고, 다른 한쪽은 압도적인 전장을 바라본 뒤에도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로한의 돌격에서 느껴지는 벅참은 기병의 숫자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화면의 크기와 겹칩니다.

부모님과 극장에서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빨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이 장면을 따로 찾아보면 영화의 감동과 그 시절 극장의 기억이 겹쳐 소름이 돋습니다. 이후 수많은 대규모 전투 장면을 봤지만 로한의 돌격을 여전히 가장 좋아합니다. 음악과 넓은 화면도 물론 강렬합니다. 하지만 제게 더 오래 남은 것은 충분한 희망이 있어서 달리는 모습이 아니라, 두려워할 이유가 눈앞에 가득한데도 앞으로 가기로 한 사람들의 결의였습니다.

오랜 부재를 한꺼번에 되돌리는 포탈

《엔드게임》의 돌격은 앞선 두 장면과 출발부터 다릅니다. 여기서 관객이 견뎌 온 것은 눈앞으로 다가오는 적보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자리입니다. 전장은 이미 무너져 있고 남은 인물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때 포탈이 하나씩 열리며 사라졌던 인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서는 병사들이 돌격을 앞두고 공포를 다스리는 대신 관객이 돌아온 얼굴들을 확인합니다. 한 명이 나타나고 또 다른 인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단순히 전력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감정이 생깁니다. 여러 작품을 지나며 보았던 만남과 이별, 실패와 상실이 함께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순간의 환호는 그 전투 안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감정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이야기와 인물이 한 화면에 모이면서 관객이 그 시리즈와 함께 보낸 시간까지 되돌아옵니다. 《브레이브 하트》에서 돌격 직전의 짧은 기다림이 공포를 눌러 두었다면, 《엔드게임》은 여러 영화에 걸쳐 만들어진 부재를 마지막 전투 직전까지 붙잡아 둔 셈입니다.

처음 포탈이 열렸을 때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극장 안의 반응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등장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터졌고, 수백 명이 거의 동시에 같은 장면에 반응했습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경험한 집단적인 감정 가운데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혼자 다시 볼 때는 그때와 조금 다릅니다. 장면은 그대로인데 극장을 가득 채웠던 환호가 없으니, 이 돌격이 관객의 기억에 얼마나 많이 기대고 있었는지도 더 잘 보입니다. 돌아온 인물이 누구인지, 왜 사라졌는지 모른다면 포탈은 화려한 등장 장면에 머물 수 있습니다. 오래 기다린 관객에게는 그 몇 분이 전투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긴 부재가 끝나는 순간이 됩니다.

세 돌격은 서로 다른 감정을 돌려준다

세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돌격이라도 관객이 기다리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보입니다. 월레스 앞에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조금만 더 붙들어야 합니다. 로한 기마대 앞에서는 눈앞의 두려움을 본 뒤에도 앞으로 갈 것인지 지켜보게 됩니다. 포탈 앞에서는 오래 비어 있던 자리에 누가 돌아오는지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이 끝난 뒤 되돌아오는 감정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브레이브 하트》에서는 눌러 둔 공포가 저항의 힘으로 바뀝니다. 《왕의 귀환》에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함께 앞으로 가기로 한 결의가 벅참을 만듭니다. 《엔드게임》에서는 오래 잃어버렸던 인물들의 귀환이 관객이 쌓아 온 기억과 만나 환호로 터집니다.

촬영 방식과 시각효과는 이 감정을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실제 거리에서 밀려오는 기병의 무게와 넓은 평원을 가득 채운 로한의 대열, 현실에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수많은 인물이 한 전장에 모이는 광경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장면의 규모를 만듭니다. 그러나 제작 기술의 발전 순서가 감동의 순위를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래된 전투 장면도 지금 다시 보면 강렬하고, 거대한 판타지 전투와 디지털로 완성된 슈퍼히어로 전장도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을 움직입니다. 결국 규모를 감정으로 바꾸는 것은 그전에 관객이 무엇을 보고 기다렸느냐입니다. 인물의 선택과 기억이 비어 있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달려도 거대한 이동에 그칠 수 있습니다.

돌격보다 조금 먼저 재생해 보고 싶다

세 장면 가운데 무엇이 최고인지 하나로 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장 맞닥뜨린 두려움을 견디는 순간에는 월레스의 기다림이 크게 다가오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는 결의에는 로한의 돌격이 어울립니다. 긴 이야기를 함께 지나온 인물들이 돌아오는 기쁨은 《엔드게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제 기억 속에서도 세 장면은 서로 다른 시간과 연결돼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옆에서 겁에 질려 보았던 기병, 부모님과 극장에서 마주한 로한의 돌격, 그리고 많은 관객과 함께 환호했던 포탈까지. 영화 속 군대의 규모는 점점 커졌지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몇 명이 달렸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달리기 직전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느냐였습니다.

세 영화를 다시 보신다면 돌격 장면만 검색해 바로 재생하기보다 조금 앞에서부터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월레스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시간, 세오덴이 대열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 첫 포탈이 열린 뒤 돌아온 얼굴들이 하나씩 자리를 채우는 시간을 함께 보는 겁니다.

말발굽과 함성이 터지기 전, 누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감수하며 누구를 기다렸는지가 보일 때 돌격의 크기도 비로소 감정의 크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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