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자리, 없었던 자리 — 《파일럿》과 《쉬즈 더 맨》

조정석 주연의 《파일럿》은 큰 기대 없이 극장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면접 장면이 시작되자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고, 저 역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습니다. 극장을 나오면서 문득 오래전에 봤던 《쉬즈 더 맨》이 떠올랐습니다. 한쪽은 남자가 여자로, 다른 한쪽은 여자가 남자로 살아가는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방향만 반대인 비슷한 변장 코미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주인공이 왜 다른 사람의 신분을 빌렸는지 놓고 보니 출발점부터 정반대였습니다. 한정우는 이미 누리던 자리를 잃은 뒤 돌아가기 위해 여동생의 신분을 빌립니다. 바이올라는 여자라는 이유로 막힌 기회를 얻으려고 쌍둥이 오빠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한 사람은 잃은 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다른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없었던 자리를 얻으려 합니다. 같은 변장인데도 두 영화를 보며 기다리게 되는 순간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잃은 자리, 없었던 자리

《파일럿》의 한정우는 잘나가던 기장에서 해직된 뒤 재취업에 계속 실패합니다. 결국 여동생의 신분으로 다시 면접을 봅니다. 황당한 선택이지만 목적은 의외로 현실적입니다. 자신이 잘하던 일을 다시 하고 싶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의 변장은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나는 모험보다 추락한 사람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택한 위험한 우회로에 가깝습니다.

바이올라는 반대편에서 출발합니다. 《쉬즈 더 맨》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원래 갖고 있던 자리를 회복하는 일이 아닙니다. 축구를 계속하고 싶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막히고, 결국 쌍둥이 오빠의 자리를 빌려 남학생 축구팀에 들어갑니다. 실력을 보여줄 기회부터 얻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한정우에게 다른 사람의 신분은 복귀를 위한 수단이고, 바이올라에게는 입장할 기회를 얻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정체가 들켰을 때 두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도 같지 않습니다. 한정우는 간신히 되찾은 직업과 생활을 다시 잃을 수 있습니다. 바이올라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애초에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무대에 설 자격부터 증명해야 합니다. 한쪽에는 다시 추락할 수 있다는 조급함이 있고, 다른 쪽에는 제대로 시험받아 보지도 못했다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여장과 남장이라는 겉모습보다 두 사람이 변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더 크게 보입니다.

면접에서는 몸이, 기숙학교에서는 관계가 꼬인다

《파일럿》에서 제가 가장 크게 웃었던 면접 장면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면접 자체는 누구나 긴장할 만한 익숙한 절차인데, 한정우에게는 질문에 잘 답하는 것 외에 한 가지 과제가 더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분과 외모를 끝까지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지원자라면 아무 의미 없을 몸짓 하나도 그에게는 들킬 수 있는 순간이 됩니다.

메이크업을 받고, 외모를 관리하고, 몸에 붙인 것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 말썽을 일으키는 장면들도 같은 방식으로 웃음을 만듭니다. 변장은 한 번 완성하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출근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는 동안 계속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파일럿》에서 웃긴 것은 여장 자체라기보다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 곤란함입니다. 극장 전체가 비슷한 순간에 웃었던 것도 면접이나 직장 생활의 긴장을 관객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쉬즈 더 맨》에서는 같은 변장이 몸보다 사람 사이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바이올라는 남자로 보이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자세를 의식합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어설픈 남자 흉내 자체가 웃겼습니다. 하지만 변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더 큰 소동은 듀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관객은 바이올라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만, 상대는 그 사실을 모릅니다.

바이올라에게는 정체를 감춰야 하는 말이 듀크에게는 남학생 친구가 건네는 평범한 말로 들립니다. 여기에 바이올라 자신의 감정과 다른 인물들의 관계까지 얽히면서 같은 대화가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한정우를 볼 때는 “이번 상황도 안 들키고 넘어갈 수 있을까”를 기다렸다면, 바이올라를 볼 때는 “저 말을 상대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더 궁금했습니다.

한정우의 변장은 생활을 꼬이게 만들고, 바이올라의 변장은 관계를 꼬이게 만듭니다.

《파일럿》에서는 면접, 메이크업, 직장 생활처럼 현실적인 절차가 계속 정체를 위협합니다. 《쉬즈 더 맨》에서는 한마디 말과 감정의 방향이 새로운 오해를 만듭니다. 같은 변장 장치를 두고 한 영화는 생활 코미디 쪽으로, 다른 영화는 관계 코미디 쪽으로 밀어붙이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평소에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몸짓까지 신경 쓰게 됩니다. 바이올라는 남자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목소리와 자세를 바꾸고, 한정우는 다른 성별로 읽히는 외모와 태도를 유지합니다. 웃음을 위한 장면들이지만 계속 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목소리와 옷차림, 자세만으로 한 사람의 정체를 판단하는지도 보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잠시 다른 성별로 살아봤다는 이유만으로 상대 성별의 삶 전체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두 영화도 거기까지 무거운 결론을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전과 다를 때 평범했던 행동 하나까지 의식하게 된다는 정도는 충분히 보여줍니다.

정반대로 시작했는데 점점 닮아간다

여기까지 보면 한정우와 바이올라는 계속 반대편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가졌던 자리를 잃은 사람과 아직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 현실의 직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과 축구팀에 들어가려는 사람. 생활 속에서 들킬까 조마조마한 사람과 관계가 꼬일수록 난처해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변장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에게 묘하게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오히려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선명해집니다.

한정우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여동생처럼 보이는 데 성공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시 자신의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바이올라도 남자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자신에게도 축구를 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변장은 두 사람의 진짜 모습을 감추는 장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욕망만큼은 더 또렷하게 드러냅니다.

두 영화를 이어 본다면 저는 《쉬즈 더 맨》을 먼저 보고 《파일럿》을 뒤에 두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았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된 바이올라를 먼저 보고, 이미 가졌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된 한정우를 이어서 보면 같은 장치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재미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이틴 관계 소동이 당기는 날에는 《쉬즈 더 맨》이 더 잘 맞고, 직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몸의 곤란함으로 크게 웃고 싶다면 《파일럿》 쪽이 편합니다. 다만 두 편을 나란히 놓았을 때 제게 더 재미있었던 것은 어느 쪽 변장이 더 자연스러운지를 비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정우는 잃어버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되고, 바이올라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출발점은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여장과 남장이라는 반대 방향보다 자기 이름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던 자리에 다른 이름으로 들어간 두 사람이 더 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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