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 《캐스트 어웨이》와 《아이언맨 3》
《캐스트 어웨이》와 《아이언맨 3》을 비교한다고 하면 조금 뜬금없어 보입니다. 한쪽은 무인도에 혼자 남은 남자의 생존 영화이고, 다른 한쪽은 최첨단 수트를 입은 슈퍼히어로 영화니까요. 저도 두 영화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3》에서 만다린의 공격을 받은 토니 스타크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뒤, 눈 내리는 시골 마을에 불시착하는 장면을 다시 떠올리다가 갑자기 《캐스트 어웨이》가 생각났습니다. 저택도 연구실도 멀리 있고, 수트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결국 자비스까지 셧다운됩니다. 늘 모든 걸 기술로 해결하던 토니가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져 혼자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는 훨씬 극단적인 방식으로 같은 상황에 놓입니다. 비행기 사고 뒤 무인도에 떨어지고, 직업도 돈도 시간표도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도움을 청할 사람조차 없습니다. 척은 문명에서 떨어져 나가고, 토니는 자신을 아이언맨으로 만들어 주던 환경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상황의 크기는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를 나란히 놓고 보니 비슷한 질문이 생겼습니다. 늘 쓰던 도구와 환경이 사라져도 이 사람은 여전히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추락하고 나서야 보인 두 사람의 맨손
《캐스트 어웨이》를 어렸을 때 봤을 때는 거의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영화로 기억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윌슨이었고, 불을 처음 피우고 환호하는 장면도 강하게 남았습니다. 먹을 것을 구하고 불을 만들고 뗏목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영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척은 원래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하는 물류 시스템 안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무인도에 떨어지고 나면 그 능력을 예전 방식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도착 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고, 업무를 나눠 줄 조직도 없습니다. 오늘 밤을 버티는 일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주변에 떠밀려 온 물건을 원래 용도와 전혀 다르게 써보고, 실패하고, 다시 만들어 봅니다. 처음부터 생존에 능숙했던 것이 아니라, 실패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익혀 갑니다.
토니도 테네시에 떨어지고 나면 묘하게 비슷해집니다. 평소 같으면 거대한 작업실과 자비스, 각종 장비를 이용했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환경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습니다. 수트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보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필요한 장비를 직접 만듭니다.
물론 둘의 능력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한쪽은 생존 방법을 처음부터 익히는 평범한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원래부터 천재적인 발명가입니다. 그래도 둘을 같이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평소 그 사람을 대단하게 보이게 했던 배경이 사라지고 나서야, 정작 본인에게 남아 있던 능력이 더 잘 보인다는 점입니다.
척에게서는 끝까지 해보는 끈기가 남았고, 토니에게서는 주변에 있는 것을 조합해 해결책을 만드는 습관이 남았습니다. 둘 다 추락하기 전에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지만, 추락한 뒤에는 결국 자기 손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
여기까지는 두 영화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립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척에게 부족한 것은 물건만이 아닙니다. 말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윌슨이 생깁니다. 배구공에 얼굴을 만들고 말을 걸고, 화를 내고, 결정을 의논합니다.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토니는 완전히 혼자가 아닙니다. 테네시에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신 자신이 늘 의지하던 방식이 사라집니다. 만다린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나 눈밭에 떨어졌는데 수트는 움직이지 않고 자비스마저 꺼지는 순간이 특히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언맨인데 정작 아이언맨답게 싸울 방법이 없습니다.
척은 혼자가 된 뒤 사람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고, 토니는 장비를 잃은 뒤 수트를 대신할 방법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윌슨과 아이언맨 수트를 서로 대응시켜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둘의 역할은 꽤 다릅니다. 윌슨은 척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만든 관계이고, 수트는 토니의 능력과 통제력을 늘려 주는 도구입니다.
오히려 그 차이가 두 인물을 잘 보여줍니다. 척에게서는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가 드러나고, 토니에게서는 아이언맨이 정말 수트 그 자체인지가 시험대에 오릅니다.
무인도보다 그다음
예전에 저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 부분이 거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윌슨, 불, 뗏목, 탈출 같은 장면이 워낙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무인도를 빠져나온 뒤의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척은 결국 살아서 돌아옵니다. 여기까지라면 거대한 생존 영화의 해피엔딩처럼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자신이 떠났던 삶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고, 켈리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살아남기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정작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았습니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한동안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큰 위기를 넘기는 것만큼이나 그 이후 달라진 삶에 적응하는 일도 어려운 게 아닐까.
《아이언맨 3》도 전투에서 이겼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토니는 영화 내내 불안과 수트에 대한 집착을 안고 있었고, 마지막에는 수트들을 없애고 자신의 몸에 남아 있던 문제까지 정리합니다.
척과 토니 모두 위기 이전의 상태를 그대로 복원하지 않습니다. 척은 섬에서 돌아왔지만 떠나기 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고, 토니는 다시 아이언맨으로 살아가더라도 수트가 자신 전부라는 식으로 머물지는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두 영화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닮아 보였습니다. 추락 장면 자체보다, 위기를 통과하고 난 다음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더 비슷했습니다.
돌아온 뒤에는 방향을 골라야 했다
《캐스트 어웨이》의 마지막이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척은 가장 어려운 생존에는 성공했지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무인도에서는 목표가 오히려 분명했습니다. 오늘 먹을 것을 구하고, 불을 지키고, 언젠가는 섬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문명으로 돌아온 뒤에는 그런 정답이 없습니다. 이제는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골라야 합니다.
토니의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그에게 남은 질문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는 아이언맨이 대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수트가 제대로 없을 때도 그는 문제를 해결했고, 직접 장비를 만들었고, 싸웠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언맨을 아이언맨으로 만드는 것이 정말 수트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척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새로 정해야 하고, 토니는 자신이 만든 수트와 자기 자신을 전처럼 하나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두 영화가 같은 결론을 내린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캐스트 어웨이》는 생존 뒤에 남은 삶과 관계를 더 오래 바라보고, 《아이언맨 3》은 토니와 아이언맨이라는 정체성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다만 둘 다 위기를 통과한 다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삶까지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척은 살아남은 뒤 어디로 갈지를 다시 골라야 했고, 토니는 수트가 없어도 남아 있는 자신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두 영화를 다시 떠올려 보니, 제게 더 오래 남은 것은 추락하는 순간보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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