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쉽게 판단한 적이 있다면, 이런 영화 3편
사람을 처음 보면 생각보다 빨리 결론을 내립니다. 말투, 옷차림, 표정 몇 가지만 보고 성격이나 능력까지 짐작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외모만 보고 누군가를 쉽게 판단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처음 생각했던 사람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때 좀 부끄러웠습니다. 상대가 달라진 게 아니라, 제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먼저 결론을 내렸던 거니까요.
《금발이 너무해》와 《터미널》은 오해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봅니다. 엘은 외모 때문에 가볍게 보이고, 빅터는 서툰 영어 때문에 답답한 사람처럼 취급됩니다.
《그랜 토리노》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이번에는 주인공 월트가 다른 사람을 먼저 잘못 봅니다.
그래서 이 세 편을 한데 묶었습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는 남이 나를 잘못 봤을 때를 보고, 마지막 영화에서는 내가 남을 잘못 봤을 때를 봅니다. 같은 첫인상 이야기지만 서 있는 자리가 다릅니다.
금발이 너무해 - 외모를 보고 능력까지 정해버린 사람들
엘보다 먼저 보인 것은 금발과 화려한 옷이었다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는 처음부터 무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목표가 생기자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갈 만큼 공부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직접 움직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 보는 건 그런 능력이 아닙니다. 금발 머리, 화려한 옷, 패션과 미용에 대한 관심입니다. 엘이 법대에 왔다는 사실 자체를 어색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판단은 아주 빨리 끝납니다. 저런 사람은 진지하지 않을 것이다.
외모에서 받은 인상이 그 사람의 지적 능력과 성실함까지 대신 설명해버립니다.
엘이 흥미로운 건 인정받기 위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옷을 버리고 누군가가 생각하는 ‘법대생다운 사람’이 되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자기 모습을 그대로 둔 채 실력을 증명합니다.
가볍게 여겼던 관심사가 오히려 사건을 푼다
후반부 법정 장면에서는 엘이 원래 알고 있던 미용 지식이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볍게 봤던 관심사가 사건의 진술을 흔듭니다.
여기서 뒤집히는 건 엘이 아닙니다. 엘을 봐온 사람들의 기준입니다.
옷을 좋아하고 외모를 꾸미는 것과 전문적인 판단을 잘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둘을 쉽게 반대편에 놓습니다. 엘은 그 기준이 틀렸다는 걸 자기 모습을 버리지 않고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엘이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해냅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중에 따라옵니다.
터미널 - 말이 서툴다고 그 사람까지 답답한 것은 아니다
빅터는 사람보다 먼저 행정 문제가 된다
《터미널》의 빅터 나보스키는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입니다. 고국에서 정치적 변동이 생기면서 여권이 효력을 잃고, 미국에 입국할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공항 관계자에게 빅터는 처음부터 한 사람이라기보다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에 가깝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설명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에도 곧장 답하지 못합니다. 프랭크 딕슨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빅터라는 사람 전체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할 줄 아는지, 얼마나 성실한지, 왜 뉴욕에 왔는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보이는 약점 하나가 다른 판단까지 끌고 갑니다.
말보다 행동을 본 뒤 판단이 바뀐다
시간이 지나면 빅터의 다른 모습이 하나씩 드러납니다. 돈이 떨어지자 공항 안에서 버틸 방법을 찾고, 자신이 가진 기술로 일을 얻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돕습니다.
영어는 여전히 서툽니다. 갑자기 유창해져서 인정받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제야 말 뒤에 있던 사람을 보기 시작합니다.
빅터를 처음에는 답답하게 보던 직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화를 잘한다는 것과 판단력이 있다는 것, 성실하다는 것, 타인을 잘 대한다는 것은 같은 능력이 아닙니다.
저는 《터미널》에서 이 부분이 좋습니다. 빅터가 주변 기준에 맞게 변해서 인정받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모습이 늦게 보였을 뿐입니다.
그랜 토리노 - 이번에는 주인공이 사람을 잘못 봤다
월트는 사람보다 먼저 인종과 낯섦을 본다
《그랜 토리노》는 앞의 두 영화와 방향이 다릅니다. 《금발이 너무해》의 엘과 《터미널》의 빅터가 오해받는 쪽이었다면, 이번에는 주인공 월트가 다른 사람을 먼저 오해합니다.
월트는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가 변하는 것을 못마땅해합니다. 옆집의 흐몽족 가족도 반갑지 않습니다. 한 사람씩 알아보기 전에 인종과 문화의 차이부터 봅니다. 이미 판단은 내려져 있습니다.
타오가 갱단의 압력에 밀려 월트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다 실패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월트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믿기 쉬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타오 한 사람을 조금 더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판단이 깨진 건 함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월트의 생각은 누군가에게 편견이 잘못됐다는 강의를 듣고 바뀌지 않습니다. 타오와 시간을 보내고, 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옆집 가족의 생활 안으로 들어가면서 바뀝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집단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각자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타오에게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성격과 사정이 있습니다. 낯설게만 보였던 이웃과 함께 있는 시간이 자기 가족과 있을 때보다 편한 순간도 생깁니다.
여기서 《그랜 토리노》는 앞의 두 영화보다 조금 불편합니다. 타인이 나를 잘못 판단하면 편견이 금방 보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을 때는 잘 안 보입니다.
월트가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도 단순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인상보다 중요한 건 생각을 고칠 수 있는가
세 영화에서 사람을 잘못 보게 만드는 단서는 모두 다릅니다. 《금발이 너무해》에서는 외모가 엘의 능력을 가립니다. 《터미널》에서는 서툰 언어가 빅터를 가립니다. 《그랜 토리노》에서는 인종과 낯선 문화가 실제 사람보다 먼저 보입니다.
앞의 두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오해받습니다. 마지막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오해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 영화까지 보고 나면 질문의 방향도 바뀝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제대로 봐주느냐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보고 있느냐가 더 불편한 질문이 됩니다.
첫인상을 아예 만들지 않는 건 어렵습니다. 처음 만난 몇 초 동안 어떤 느낌이 드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고칠 수는 있습니다.
처음 생각과 다른 모습을 봤는데도 계속 옛 판단을 붙잡을지, 아니면 내가 틀렸다고 인정할지. 이 세 영화는 그 차이를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보여줍니다.
나는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걸 알게 된 뒤, 생각을 고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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