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센티넬과 맞붙자 ‘이번 능력은 통하겠지’가 사라졌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미래 전투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센티넬이 무섭게 생겨서라기보다, 그 앞에 선 뮤턴트들이 제가 알던 히어로들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초능력을 쓰고 있습니다. 몸을 강철처럼 만들고, 불과 얼음을 다루고, 공간을 열어 공격을 피합니다. 다른 히어로 영화라면 새로운 능력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이제 반격이 시작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반대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번 능력은 통하겠지’ 하고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능력이 등장하는 것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나오는데 안심이 되지 않았다
히어로 영화에서 위기에 몰린 캐릭터가 새로운 능력을 꺼내면 보통 선택지가 하나 늘어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면으로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싸우고, 한 사람이 밀리면 다른 사람이 나섭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이 전투를 봤습니다.
뮤턴트들은 생각보다 잘 버팁니다. 각자의 능력을 따로 쓰기보다 서로 연결하면서 센티넬을 상대합니다. 블링크가 포털을 열어 공격의 방향을 바꾸고, 다른 뮤턴트들이 그 틈을 이용합니다. 잠깐씩은 센티넬에게 제대로 반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흐름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센티넬은 계속 대응하고, 조금 전까지 효과가 있어 보였던 공격도 다시는 확실한 답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른 뮤턴트가 능력을 보여주면 기대가 생기기보다 이번에는 어떻게 막힐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전투를 보는 질문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누가 이걸 뒤집을까’가 아니라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가 됩니다.
그 변화가 저는 꽤 낯설었습니다. 엑스맨을 보면서 캐릭터의 능력을 기다리지 않게 된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길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장면의 상황을 알고 보면 제가 느낀 당혹감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미래의 센티넬은 뮤턴트의 능력에 맞춰 적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초반 전투에서 살아남은 뮤턴트들이 하는 일도 센티넬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키티가 비숍의 의식을 과거로 보내 공격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시간을 만드는 동안 다른 이들이 버팁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달랐던 겁니다.
저는 화면을 보면서 계속 ‘왜 이렇게 못 이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만 승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뮤턴트들의 능력도 다르게 보입니다. 누군가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몇 초를 더 만들기 위해 쓰입니다. 화려한 능력이 나와도 상황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끝낼 때까지 시간을 조금 늘려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의 액션은 싸울수록 통쾌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던 히어로 영화의 방식에서 멀어집니다.
히어로인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포
처음에는 센티넬의 압도적인 성능 때문에 이 장면이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다시 떠올리면 조금 다릅니다.
힘이 없는 사람이 강한 상대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 있는 사람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자 특별한 능력이 있고, 그것을 다룰 줄도 알고, 함께 싸우는 방법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진 것을 하나씩 꺼내는데도 미래가 바뀌지 않습니다.
힘이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하는 것과, 힘이 있는 사람이 가진 것을 전부 꺼냈는데도 바꾸지 못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더 무서웠던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려고 그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살아남을 거라고 믿어서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몇 초를 더 주기 위해 계속 능력을 꺼냅니다.
처음 봤을 때 제 머릿속에는 한동안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잠깐, 이 사람들 히어로 맞는데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지?’
지금은 그 질문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못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히어로에게 당연히 기대했던 일을 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적을 쓰러뜨리고 상황을 뒤집는 대신, 이미 뒤집을 수 없어진 세계에서 잠깐 더 버티고 있었습니다.
센티넬이 무서웠던 이유도 결국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뮤턴트의 능력을 무력화해서만이 아니라, ‘아직 저 능력이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던 제 기대까지 하나씩 없애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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