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 《업 인 디 에어》와 《실미도》
《업 인 디 에어》와 《실미도》는 좀처럼 함께 떠오르지 않는 영화입니다. 한쪽은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옮겨 다니는 해고 전문가의 이야기이고, 다른 한쪽은 국가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특수부대의 이야기입니다. 관계의 크기도 다릅니다. 라이언과 알렉스 사이에는 두 사람이 있고, 《실미도》의 684부대 앞에는 국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영화에는 닮은 순간이 있습니다. 라이언은 알렉스의 삶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고, 684부대원들은 국가 안에서 자신들이 어떤 존재로 취급되고 있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됩니다. 둘 다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에야 자신이 그 안에서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현관문 앞에서 드러난 라이언의 자리
《업 인 디 에어》의 라이언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결혼도, 가족도, 한곳에 머무는 삶도 부담스러워합니다. 알렉스와의 관계도 처음에는 그런 라이언에게 잘 맞아 보입니다. 둘 다 자주 이동하고, 일정이 맞을 때 만나며, 서로의 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처음의 라이언이라면 그 정도 관계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라이언은 달라집니다. 혼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이 알렉스를 자기 삶 안으로 조금씩 들이기 시작하고, 결국 예고도 없이 그녀의 집을 찾아갑니다.
문이 열리자 그 뒤에는 라이언이 전혀 알지 못했던 알렉스의 생활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있는 집, 자신이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일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알렉스에게 가족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라이언은 자신이 알렉스의 삶에서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처음 보게 됩니다.
라이언에게 알렉스는 이제 자신의 일상으로 데려오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스에게는 이미 라이언이 모르는 일상이 따로 있었고, 그 안에서 라이언의 자리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숨겨진 가족을 발견하는 반전보다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라이언이 몰랐던 것은 알렉스의 삶만이 아니라 자신이 그 삶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였습니다.
제거 명령 뒤에 드러난 684부대의 자리
《실미도》의 684부대원들은 전혀 다른 관계 안에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연애가 아니라 임무입니다. 혹독한 훈련을 견디는 동안 이들은 자신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으로 넘어가 김일성을 암살한다는 목적이 있고, 자신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람들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변하면서 임무는 취소됩니다. 영화에서는 이후 중앙정보부가 684부대원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부대원들은 자신들을 없애려는 움직임을 알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들은 필요가 사라진 뒤 버려진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반란 과정에서 영화가 드러내는 사실은 그보다 더 잔인합니다.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법적으로 이미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처리돼 있었으며, 임무에 성공했더라도 그 공을 인정받고 평범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단순히 작전이 취소됐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임무가 사라진 뒤에야 버려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가의 공식적인 자리 안에 온전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앞서 보았던 훈련도 다르게 보입니다. 부대원들은 국가가 자신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겼다고 생각했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에게는 임무를 끝낸 뒤 돌아갈 공식적인 자리조차 보장돼 있지 않았습니다. 제거 명령은 새로운 배신이면서 동시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관계의 실체를 드러내는 명령이 됩니다.
달랐던 자리와 애초에 없었던 자리
이 지점에서 두 영화는 닮아 있으면서도 분명하게 갈라집니다. 라이언은 알렉스의 삶 안에 자기 자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에게 자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라이언이 기대한 자리와 알렉스가 허락한 자리가 달랐습니다. 라이언은 관계를 자신의 일상 안으로 옮기려 했지만, 알렉스에게 라이언은 그 일상의 바깥에 머무는 사람이었습니다.
《실미도》의 684부대원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더 극단적입니다. 자신들이 국가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뒤늦게 드러내는 것은 그들의 공식적인 자리 자체가 처음부터 지워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라이언은 자기 자리를 잘못 알고 있었고, 684부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돌아갈 자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영화의 배신을 같은 크기로 놓을 수는 없습니다. 라이언과 알렉스의 관계에는 애초부터 모호함이 있었습니다. 둘은 전통적인 연애를 약속하고 시작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그 관계를 더 깊은 곳으로 옮기려 한 쪽은 라이언이었습니다. 반면 《실미도》의 부대원들이 마주하는 것은 개인적인 관계의 오해가 아니라 자신들을 만든 조직과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책임도, 피해의 크기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도 두 장면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었나.
버림받은 뒤에 보인 자기 위치
라이언은 현관문 앞에서 그 질문과 마주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함께 살아갈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일상의 바깥에서 잠시 만나는 사람이었는지. 684부대원들은 제거 명령과 자신들의 처지를 알게 되는 과정에서 더 거대한 형태의 같은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이었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기록 밖에 놓인 채 필요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져도 되는 존재였는지.
처음에는 두 영화 모두 믿었던 상대에게 버림받는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면 더 잔인한 것은 버림받는 순간 자체만이 아닙니다. 그 순간이 오고 나서야 상대가 자신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라이언은 현관문 하나가 열리면서 그것을 봅니다. 684부대원들은 제거 명령과 자신들의 존재에 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것을 봅니다. 한쪽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이고, 다른 한쪽은 개인과 국가의 관계입니다. 크기는 전혀 다르지만 두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결국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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